[사설]남·북·미 정상, 분단 상징 판문점에서 평화의 악수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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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사설]남·북·미 정상, 분단 상징 판문점에서 평화의 악수를 하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7. 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판문점에서 만났다. 전쟁 당사국 북한과 미국의 최고지도자가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이래 처음으로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평화의 악수를 한 것이다. 두 정상은 판문점을 남북으로 가르는 5㎝의 경계석에서 마주 서서 악수한 뒤 함께 경계석을 넘어 북측 지역으로 걸어 들어갔다. 미국 현직 대통령이 분단의 최전선이자 66년 전 정전협정이 체결된 판문점에서 북한 최고지도자와 악수한 뒤 적대 국가인 북한 땅을 밟는 세기적인 순간이었다. 두 정상은 다시 남측지역으로 내려와 자유의집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문재인 대통령과도 만났다. 머릿속으로만 그려지던 역사적인 남·북·미 정상 3자 회동이 판문점에서 실현된 것이다. 이어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으로 자리를 옮겨 모두발언을 포함해 50여분간 단독 회동을 했다. 사실상 3차 북·미 정상회담을 한 것이다. 북·미 정상은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지난 2월 하노이 등 두 차례 정상회담을 한 바 있다. 판문점 약식 회담은 성명·합의문 없는 짧은 만남이었지만 지구상 유일한 냉전의 현장이라는 장소성을 고려한다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대사건이 아닐 수 없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0일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걸어오고 있다(위 사진). 김 위원장과 만난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땅을 밟았다(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측 지역에서 김 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아래). 판문점 _ 김기남 기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회동에 대해 “어제 생각하기로 여기(대한민국)까지 왔으니, 김 위원장과 인사를 하면 어떨까 했다”며 “이렇게 얘기를 했더니 (북측에서) 바로 반응이 왔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이달 들어 친서 교환을 통해 ‘흥미로운 메시지’를 주고받았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만남은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 이전부터 교감이 이뤄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는 해도 한국방문 계기에 단순 회동도 아닌 50분이 넘는 약식회담이 성사된 것은 두 정상의 친분과 신뢰가 매우 두터우며, 이것이 북·미관계의 굳건한 기반임을 말해준다. 이번 만남은 한반도 평화를 톱다운 방식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북·미 정상의 의지로 성사됐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두 정상의 용기와 의지를 높게 평가한다. 


판문점 회담은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성과도 거뒀다. 가장 큰 것은 북·미 실무협상 재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른 시일 내 실무팀을 지정해 포괄적인 협상을 벌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판문점 깜짝 회동이 북·미 대화 재개를 추동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백악관 초청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큰 고개를 넘었다”고 했다. 판문점 자유의집을 나서는 세 정상의 밝은 표정이 북·미 협상에 기대감을 갖게 한다.


북·미 회동에 앞서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 결과도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에 대한 기대감을 낳았다. 문 대통령은 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두 정상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 구축, 북·미관계 정상화를 공약한 싱가포르 합의를 동시·병행적으로 이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합의에 담긴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 평화구축 의제를 동시에 병행하겠다는 것으로, ‘선비핵화’를 압박하던 미국의 기존 태도와는 다른 모습이다. 다만 ‘동시·병행적 이행’이 북한이 주장해온 단계적·동시적 행동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어서 실무협상 결과를 지켜볼 필요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북 제재 해제에 대해서는 “급하게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북·미 협상에 대해 “속도보다 올바른 협상을 추구하겠다”고도 했다. 판문점에서 연출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협상에서는 실질적인 성과에 무게를 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노이 2차 정상회담에서 확인된 북한과 미국의 입장차가 워낙 현격했던 터라 실무협상이 순항할 것이라고 낙관하기 어렵다. 전문가들도 섣부른 기대감은 금물이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하노이 회담이 성과없이 끝나고 북·미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진 지 넉 달 만에 사실상 양국 정상의 단독회담이 열린 것은 향후 협상 방향 설정과 동력 제공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은 한반도 냉전의 두꺼운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기존 상식을 뛰어넘는 상상력과 창의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다시금 일깨운다. 정상적인 외교관행이나 의전 등을 고려한다면 결코 성사될 수 없었을 회동이 두 지도자의 파격적인 발상으로 현실화됐고, 한반도와 국제사회에 큰 희망을 주게 된 것이다. 곧 재개될 실무협상도 기존 관행에 얽매이지 않는 담대한 상상력과 지혜로 한반도 평화를 일구는 성과를 내길 기대한다. 제재 완화가 어렵다면 북·미 연락사무소 설치, 불가침 조약 체결 등 안전보장을 위한 상응조치로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은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인 뒷받침이 없었다면 결코 성사될 수 없었을 것이다. 북한이 남측과 좋은 관계를 맺고 충분히 대화해야 북·미관계 역시 순항할 수 있다. 판문점 회동을 계기로 북한이 남북대화에 적극 나서줄 것을 당부한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남·북·미가 함께하는 여정임을 오늘 판문점에서 여실히 체감했을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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