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북한 주택개량 사업과 ‘통일 준비’의 공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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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사설]북한 주택개량 사업과 ‘통일 준비’의 공허함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10. 14.

대통령 산하 통일준비위원회는 그제 2차 회의를 열고 남북협력 사업, 통일 구상을 논의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은 회의에서 북한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지원과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구체적으로 복합 농촌 단지 사업, 비료지원, 생활환경 개선을 위한 부엌 개조, 마을 도로 정비 등 민생 인프라 사업을 거론했다. 비무장지대 세계생태평화 공원을 위해 기초 설계 작업, 주변 지역 도로 정비 등 연계 발전 계획을 추진해서 북한도 동참할 수 있도록 이끌어 나가야 한다는 점도 밝혔다. 통일준비위는 북한에 10년간 100만호 주택을 짓는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 회의 장면은 마치 1960, 70년대 남한의 주택 개량을 포함한 개발사업을 논의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이 관련 부처 장관들을 불러 계획을 확정하면 관료들이 알아서 집행하고 결과를 보고하는 일상적 회의를 연상케 하는 것이다.

물론 이 회의가 북한과의 협력에 필요한 사전 준비를 하는 것이라면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이유는 없다. 문제는 현실이 북한과 협력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데 있다. 지금 북한과 그런 수준의 협력사업을 추진한다는 건 꿈도 꾸기 어렵다. 이런 구상들은 박 대통령이 발표한 드레스덴 구상에도 일부 포함되기는 했지만 북한은 이미 흡수통일을 위한 것이라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힌 바 있다.

한마디로 북한을 대상으로 하는 개발사업이지만 북한 없이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대화와 협력의 상대, 궁극적으로 통일의 한 주체인 북한이 빠진 이런 통일 준비라면 통일의 희망을 구현할 수 없다. 북한에 흡수통일을 준비한다는 신호를 주는 것 말고 다른 효과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흡수통일을 전제로 한 통일준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을 새겨듣지 않고 있다.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통일준비위원회 제2차회의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남한이 북한을 접수할 대상이 아니라 통일의 주체로 여긴다면, 그걸 증명해 보일 방법이 있다. 5·24 대북 제재 조치 철회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남북 교류와 협력을 본격화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통일준비위에 이런저런 당부와 지침을 내릴 때가 아니다. 그 반대로 통일준비위가 대북정책이 통일의 방향과 맞는지 점검하고 수정할 것을 대통령에게 건의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대규모 회의를 열어 통일 이후 북한 복지·연금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왜 공허해 보이는지 진지하게 숙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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