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새 일왕 즉위,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출발점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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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사설]새 일왕 즉위,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출발점 되길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4. 30.

일본 아키히토(明仁) 일왕이 30일로 퇴위하고 다음날인 5월1일 나루히토(德仁) 왕세자가 새 일왕에 즉위한다. 헤이세이(平成) 시대가 30년 만에 막을 내리고 ‘아름다운 조화’를 의미하는 레이와(令和) 시대가 열린다. 


일본 사회는 27일부터 시작된 열흘간의 ‘골든위크’ 연휴가 겹치면서 들뜬 축제 분위기다. 히로히토 일왕의 사망으로 일본 전체가 ‘자숙’ 분위기에서 시작된 헤이세이와 달리 아키히토 일왕이 생전 퇴위를 결정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가뿐한 기분으로 맞게 된 것이다. 헤이세이 30년은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경제불황과 3·11 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원전사고 등 재난으로 얼룩졌다. 전쟁과 전후 고도성장의 경로를 숨가쁘게 달려온 쇼와(昭和) 시대의 피로증이 사이비 종교인 옴진리교의 사린가스 테러사건 등을 유발하기도 했다. 일본인들은 이런 전후(戰後)유산과의 단절을 소망하며 레이와 시대를 맞고 있다. 


아키히토(왼쪽), 나루히토. AFP연합뉴스


나루히토 새 일왕은 1960년생으로 전후에 출생한 첫 일왕이다. 아베 신조 총리도 1954년생으로 전쟁을 겪지 않았다. 총리에 이어 전후세대 일왕의 등장으로 주변국에 대한 부채의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일본을 지향하는 흐름이 뚜렷해질 가능성도 있다. 부친의 전쟁을 곁에서 지켜본 아키히토 일왕은 ‘평화주의’를 평생의 신념으로 삼았고, 아베 총리의 역사수정주의와 군사대국화 움직임을 견제해 왔다. 새 일왕도 평화주의 전통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버지만큼 또렷하게 목소리를 낼지는 두고봐야 한다. 


일왕교체라는 시대 전환을 맞는 이웃 일본을 지켜보는 심경은 복잡하다. 한·일관계가 강제징용 배상 판결, 초계기 레이더 논란 등이 겹치며 최악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양국 간 외교갈등이 경제 분야로 옮겨붙는 정황도 나타난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듯’ 새 일왕의 즉위를 맞아 앙금을 훌훌 털고 관계개선을 시도할 엄두조차 못 낼 형편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방치하는 것은 양국 정부 공히 직무유기다. 양국은 레이와 시대의 개막을 계기로 출구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오는 6월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도 관계복원의 모멘텀으로 활용해야 한다. 새 연호에 담긴 평화정신에 걸맞게 아베 정부가 좀 더 겸허한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도 바람직한 양국관계의 미래를 위해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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