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가토 전 지국장 무죄 판결, 박 대통령 언론통제 반성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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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사설] 가토 전 지국장 무죄 판결, 박 대통령 언론통제 반성하는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2. 17.

박근혜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에 대해 서울중앙지법이 어제 무죄를 선고했다. 아무리 대통령의 명예가 중요하더라도 민주주의의 기본인 언론과 표현의 자유보다 우선할 수 없음을 확인해준 판결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법원은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7시간 행적에 대한 가토 전 지국장의 칼럼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동의하기 어려운 허위사실을 적시하고 대통령 개인의 명예를 심각히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유죄를 인정하지 않은 이유는 명확하다. 칼럼이 한국의 정치적 상황을 전하기 위해 작성됐고 비방의 목적이 없는 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언론보도에 대한 처벌은 단지 허위사실만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되고 권력에 대한 비판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사명에 비춰 보도 목적이 언론자유의 한계를 벗어났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법원은 “우리나라가 민주주의 제도를 취하고 있는 이상 제도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언론의 자유를 중시해야 한다”며 “언론자유는 근본적으로 소수자의 의견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결했다.

물론 법원도 인정했듯 칼럼은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근거로 대통령을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내용을 담으면서도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무책임한 보도였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가토 전 지국장이 마치 핍박받는 언론인의 이미지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까지 비쳐 거꾸로 한국 정부가 공격을 받게 된 것은 전적으로 대통령과 검찰의 잘못이다. 언론과 시민의 자율적 비판에 맡겨야 할 사안을 대통령이 직접 나서 “모욕적 발언이 도를 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고 검찰이 무리하게 기소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참사 당일 행적에 의혹을 제기해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일본 산케이신문 가토 다쓰야 전 서울지국장이 17일 1심 선고 공판을 마치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_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검찰의 자충수로 한국은 자국의 대통령을 비판한 외신기자를 재판에 회부한 ‘언론 후진국’이라는 오명과 함께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외교적 고립을 자초했다. 법원의 판결 선고가 있기 직전 외교부가 한·일관계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선처를 호소하는 공문을 보냈다고 하지만 역시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가 몰고 올 파장을 예상했다면 외교부는 진작에 대통령을 설득했어야 맞다. 또한 외교부가 무죄 취지의 탄원을 한 것이 사실이라면 박 대통령의 실책을 인정한 것이자 사법부의 독립을 부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래저래 가토 전 지국장의 기소는 명분도 실리도 없고 외교적으로 망신만 당한 사건이 되었다. 이 모두가 검찰을 비롯해 정부 당국자들이 국민기본권이나 외교적 국익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대통령 한 사람의 입만 바라보고 대통령의 심기 경호에 급급한 결과라 할 수 있다. 특히 이번 판결은 공인, 그중에서도 대통령은 비판적 언론보도에 대해 일반인들보다 훨씬 더 관용할 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박근혜 정권이 판결을 존중한다면 입맛에 맞지 않는 보도가 많다며 방송과 포털을 길들이고 사이버 명예훼손에 공권력을 동원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시대착오적 행태는 즉각 중단해야 한다.

당장 방송통신심의위는 공인에 대한 비판을 차단할 의도로 의심받는 ‘정보통신에 관한 심의규정’부터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법원에서 가토 전 지국장의 칼럼을 허위사실로 판단했다는 이유로 방심위가 ‘대통령의 7시간’에 대한 정당한 문제제기 글까지 삭제하겠다고 나선다면 판결 취지와 거꾸로 가는 것이다. 특히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박 대통령 조사를 더 이상 정치논리로 막아서는 안된다. 무책임한 보도와 공연한 의혹을 막기 위해서라도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7시간은 특조위의 조사와 언론의 자유로운 취재의 대상이 돼야 한다. 박 대통령과 검찰은 언론의 공적 책무를 부정하고 민주주의를 위축시킨 행위에 대해 성찰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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