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남북 고위급의 화기애애한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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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시론]남북 고위급의 화기애애한 만남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10. 5.

아시안게임 폐회식에 참석하기 위해 북한 대표단이 전격적으로 인천을 방문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한 달째 공식 석상에 보이지 않고, 우리 측의 고위급 접촉 제의에 묵묵부답이던 상황에서 북한 고위급 인사의 방한은 큰 관심거리였다.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은 김정은 정권 최고 실세 3인방으로 꼽힌다. 이들의 방한은 단순히 아시안게임 폐회식에 참석하기 위한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들이 김관진 국가안보실장·류길재 통일부 장관과의 오찬, 정홍원 총리와의 회동에서 김정은 제1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북한 최고위급 실세들의 방한은 친서에 갈음하는 메시지를 가지면서 남북관계에서 모종의 돌파구를 열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듯하다.

북한 실세 3인방의 방한은 각각의 역할을 가진 듯하다. 황병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겸 총정치국장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김정은 제1위원장의 따뜻한 인사말을 전했다. 무엇에 대한 인사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따뜻한 인사말”은 고맙고 앞으로 잘해보자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 듯하다.

박 대통령과 김정은 제1위원장 간에는 일면식도 없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의 대북지원과 협력에 대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직접적인 감사 표시를 이끄는 데 상당한 노력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우리 대통령에게 고맙다는 인사말을 전하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최룡해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겸 당비서는 북한 선수단에 대한 격려의 역할을 한 듯하다.

김정은 제1위원장은 교육과 체육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9월25일 최고인민회의에서 12년 교육의무제의 전면적 실시를 채택했다.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해 당적·국가적 차원에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국가체육지도위원회에는 당·정·군의 최고 실세들을 부위원장과 위원으로 포진시켰다. 김 제1위원장이 교육과 체육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젊은 지도자와 미래 지지세력들이 함께할 수 있다는 전략적 의도가 담겨 있는 듯하다. 김양건 대남비서는 남북관계 개선의 메시지를 전했다. 김정은 정권은 경제난 극복을 위해 대외관계 안정화가 필요하다. 미국은 선 남북관계, 후 북·미관계를 강조한다. 중국은 6자회담에 앞서 남북관계 개선을 촉구한다. 북한은 대미관계 개선과 대중관계 복원을 위해 남북관계 개선에 시동을 건 듯하다. 남과 북은 이번 고위급 오찬 간담회에서 10월 말에서 11월 초 사이 제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한다는 데 합의했다.

김양건 북한 대남담당 비서(왼쪽)가 4일 인천아시아드주경기장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서 황우여 교육부 장관(오른쪽), 류길재 통일부 장관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출처 : 경향DB)


북한 실세 3인방의 이례적인 방한은 외형상으로는 북한 선수단에 대한 격려지만, 실제적으로는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보여주면서 남북관계 및 한반도 문제를 북한 측이 주도하고 있음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듯하다. 박 대통령도 북한 실세 3인방이 요청한다면 만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대통령은 북한의 보편적 인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책무다. 박 대통령과 북한 실세 3인방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박 대통령의 유연성은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한다. 박 대통령의 유연성이 지속된다면 남북정상회담도 그리 머지않을 듯하다.

남과 북은 제2차 고위급 접촉을 하기로 합의했다. 역사적 경험을 되돌아보면 남북 간의 합의가 이행되지 않은 사례들이 많다. 합의 불이행의 근원은 남북 당국 간 불신이다. 제2차 고위급 접촉을 하기까지 남과 북의 당국자들은 언행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고위급 접촉을 하더라도 남북관계 제반문제에 대한 입장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한방에 해결하려는 자세는 버려야 한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로 접근한다면 좋은 결실을 얻을 수 있다. 제2차 고위급 접촉에서는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금강산관광 재개, 우리 측의 통일부와 북측의 통전부가 중심이 되는 장관급 회담 복원에 합의하기를 기대한다.


양무진 |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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