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휴전선은 무너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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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시론]휴전선은 무너져 간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5. 25.

마침내 그녀들이 군사분계선을 넘어왔다. 15개 나라 30명의 여성평화활동가들이 5월의 땡볕 아래 민간인 통제구역 옆을 걸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동안 ‘비무장지대 건너는 여성들’(WCD)은 두 가지를 요구해 왔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끝내고 통합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세계여성운동은 얼어붙은 분단의 장벽을 넘어서려는 일대 평화 바람을 일으켰다.

이 평화대행진은 다음 네 가지 사실에 근거해 2009년부터 준비되어 왔다. 한국전쟁 3년 동안 400만명이 죽었다. 비무장지대에 의해 아직도 1000만 가족들은 이별한 상태이다. 7000만 한국인들은 해결되지 않은 갈등 때문에 여전히 전쟁 상태에 살고 있다. 임시 정전협정이 이루어진 지 60년 이상 되었지만 우리는 여전히 평화협정을 기다리고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그리고 한국에서는 정전협정이 만들어 놓은 미해결 갈등으로 인해 매년 군사화에 1조달러를 소모하고 있다. 동아시아의 중무장지대는 사라져야 한다.

2011년 6월, 제주 강정마을을 방문해 해군기지 신설을 반대한다고 밝혔던 미국의 여성운동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휴전선을 넘자마자 “남북한 정부가 승인해준 행사를 통해 평화를 위한 일보 전진을 이뤄 감격스럽다”고 말했다. 라이베리아 출신으로 2011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리마 보위는 “우리의 굳건한 신념은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197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북아일랜드의 메어리드 매과이어는 “남북한이 (민족간) 공통점에 기반을 둬 정전협정에서 평화협정으로 변화를 이뤄냈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이들이 이번 행사를 주최한 이유는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고, 이산가족 상봉을 촉구하며,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과 한반도 긴장 완화, 군비 축소를 위해서라고 리마 보위는 설명했다. 이처럼 간명한 해법을 실천하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난 것이다.

6일간의 강행군에도 불구하고 이들 모두 지친 기색도 없이 환한 얼굴들이었다. 웃음은 사람만이 가진 공감의 표정이다. 철벽처럼 느껴지는 휴전선의 철조망 하나를 걷어버린 느낌을 강하게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기업가의 손에 의해 소떼가 넘어가고, 여대생과 신부가 걸어 내려오고, 대통령 부부가 걸어 넘어간 적은 있었다. 원래 분단의 상징 판문점 앞을 걸어 내려오려는 계획은 수정되었으나 충분한 극적 효과를 거두었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남북 사이의 통일은 분단장치를 해체하고, 상호갈등과 대립에서 벗어나는 일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 세계평화행진은 그런 희망과 낙관을 현실화해낼 가능성을 역동적으로 보여 주었다.

세계 여성평화운동단체 '위민크로스디엠지'(WCD)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24일 경의선 육로를 통해 남북 비무장지대(DMZ)를 통과하고 도라산 출입국사무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출처 : 경향DB)


지난 24일 한국 쪽 ‘동행’ 행사를 벌인 임진각은 한국전쟁 이후 포로들이 걸어 내려온 곳이며, 1974년 남북공동성명 이후 이산가족들이 북녘 고향을 향해 차례를 지내는 망배단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임진각 주변은 화해와 평화, 통합의 장이다.

일부 보수반공단체에서는 WCD 활동에 대해 볼멘소리를 했으나 행사 진행의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아직도 전쟁과 무기의 힘으로 상대를 제압해야만 성이 찬다는 사람이나 세력이 한반도 분단을 고수하려 하고 있는 한, 평화통일운동의 설 땅은 좁은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여성 특유의 친화력과 호소력은 평화·생명·통일운동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다. 나와 다른 견해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게 화해의 출발이자 평화·생명·통일운동의 바탕이다.

아쉬운 점은 정작 남북한 여성들은 각각 제 나라에서만 이들의 마중을 나가야 했다는 데 있었다. 평화·생명·통일운동은 앞으로 더 많은 과제와 도전에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기대를 건다. 여성이 나서야 세상을 올바르게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허상수 | 지속가능한 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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