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실망스러운 북한의 반기문 총장 방북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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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사설]실망스러운 북한의 반기문 총장 방북 취소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5. 20.

북한이 어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을 돌연 취소했다. 반 총장은 당초 오늘 개성공단을 방문하기로 했으나 북측이 갑자기 방북 허가 결정을 철회한다고 통지한 것이다. 북한이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을 일방적으로 취소한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외교적 결례다. 한반도 평화 메신저로서 반 총장의 방북이 경색된 남북관계 개선의 촉매로 작용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유감스럽다. 개성공단 내 북한 근로자 최저임금 인상을 둘러싼 남북 갈등 해소의 단초 역할을 하리란 기대도 물거품이 됐다.

북한이 방북을 전격 취소한 배경은 분명치 않다. 북측은 철회 이유에 대해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고 반 총장은 밝혔다. 반 총장이 그제 기자회견에서 “미사일 발사와 핵개발, 이런 것들이 모두 유엔 안보리 결의에 위배되는 사항이라는 것을 북한 정부에 말씀드린다”고 발언한 것이 북측을 자극했을 수도 있다. 북한은 어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내 유엔 안보리가 미국의 독단과 전횡에 따라 움직이는 기구라고 비난했다. ‘주권 존중의 원칙, 내정 불간섭의 원칙을 스스로 포기한 기구’의 수장이니 설령 결례가 되더라도 방문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번복했을 법하다. 반 총장의 방북 계획이 알려진 뒤 남쪽과 국제사회의 관심이 집중되면서 개성공단 임금 갈등 해소의 계기나 남북관계 개선의 단초가 될 것이라는 등 긍정적 전망이 쏟아지자 북측이 부담을 느꼈을 수도 있다. 반 총장의 방북 거부 이유가 무엇이든 단 하루 만에 방북 허가와 취소 사이를 오간 것은 북한 내부 의사결정의 불안정성을 보여준다. 가뜩이나 북한은 군부 서열 2인자인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숙청하면서 불안과 유동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20일 오후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새내기 외교관들의 환영 피켓팅을 바라보고 있다. _ 연합뉴스


북한은 반 총장의 개성공단 방문 허가 취소로 국제사회에서의 이미지 개선 기회를 무산시켰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러시아 전승절 기념행사 참석을 검토했다가 불참키로 전격 결정한 것과 함께 약속을 지키지 않는 국가로 낙인찍히지 않을까 우려된다. 반 총장은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에 관심을 갖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역량과 조건을 갖춘 국제기구 수장이다. 그제 회견에서도 “유엔은 북한의 유엔이기도 하다. 북한이 손을 내민다면 도움을 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더구나 평양도 아니고 부담이 훨씬 덜한 개성공단 방문인데도 경직된 자세를 보인다면 국제사회의 정상적인 일원이 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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