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남북관계의 ‘골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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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정동칼럼]남북관계의 ‘골든타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5. 28.

때 이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2015년 오월 하순, 남북관계는 계절을 거슬러 꽝꽝 얼어붙고 있다.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 골든타임이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 임기 5년 중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앞둔 올해가 꽉 막힌 남북관계를 풀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그러나 오히려 현상 유지도 아닌 퇴보, 이것이 남북관계의 현주소다.

남북관계는 모든 분야와 이슈에서 꽉 막혀 있다. 6·15공동선언 15주년을 보름여 앞둔 지금, 남북 당국 간 샅바싸움 속에 민간 공동행사가 열릴 기미조차 없다. 5월 초 ‘광복 70돌, 6·15남북공동선언 발표 15돌 민족공동행사 준비위원회’의 남측 대표단이 중국 선양에서 북한 관계자들을 만났으나 6·15와 8·15 공동행사 개최 장소를 제대로 합의하지 못했다. 이후 이 문제를 풀기 위한 접촉조차 이뤄지지 않으면서, 공동행사는 한 발짝도 걸음을 떼지 못하고 있다.

최근 북한의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실험으로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대북 여론도 나빠지고 있다. 이에 대응이라도 하듯 미국은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남한 내 배치를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SLBM과 사드는 앞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숙주이자 뇌관이 될 수 있는 소재다. 미국은 북한의 SLBM을 부각시키면서 사드 배치를 몰아붙일 수 있다. 북한도 사드에 반발하면서 중국과의 공동대응 전선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이 가운데 북한의 저강도, 고강도 무력시위가 다차원적으로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현영철 북한군 인민무력부장 ‘처형설’도 남북 당국 간 감정을 세게 건드리는 소재로 작용하고 있다. 북한은 현영철 사태에 대한 박근혜 대통령의 김정은 제1위원장 ‘공포정치’ 발언 등으로 감정이 좋지 않은 상태다. 북한 외곽단체들의 박 대통령 실명 비난의 강도가 부쩍 세지고 있는 것도 날 선 감정의 표현이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표현들이 난무하면서, 당국 간 감정싸움은 남북관계 악화에 기름을 붓고 있다.

5·24조치 5년을 경과하는 지금, 이 조치를 풀기 위한 노력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는다. 5·24조치는 최대한 조기 해제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당장은 남한 내 보수여론의 강경 대북 입장으로 풀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5·24조치 해제 없이는 남북 간 교류 협력, 남북관계의 근본적 개선은 한 걸음도 뗄 수 없다. 남북 당국이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금강산관광 재개를 매개로 남북관계 개선의 성과를 거두는 과정에서 5·24조치도 점진적으로 풀 수 있을 것이다. 그 성과를 바탕으로 5·24조치 해제의 방향을 잡아야 할 것이다.

이처럼 악화되는 남북관계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5월21일 개성공단 방문을 무산시켰다. 한국인 유엔 수장으로 반 총장이 개성공단을 방문한다는 것만으로 전 세계적인 뉴스가 된다는 점에서 방문 무산은 매우 안타까운 부분이다. 개성공단의 국제화를 세계에 확실히 각인시킬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가 버렸다. 개성공단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개성공단의 발전, 전향적인 남북관계 개선을 남북 당국에 호소하는 모습을 기대했던 이들에게 반 총장의 방문 무산은 두고두고 아쉬울 것이다.

북한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을 돌연 철회한 20일 오후 파주 도라전망대에서 관광객들이 망원경으로 북측을 바라보고 있다. _ 연합뉴스


따뜻한 봄날 방북하길 바란다는 북측의 초청장을 받아 둔 이희호 여사의 평양행은 31도를 넘나드는 무더위에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 제1위원장을 만나 남북관계 개선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의중을 전달하고, 김 제1위원장의 의중을 박 대통령에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여사의 방북은 매우 의미 있다. 그러나 방북을 둘러싼 환경이 급격히 악화하면서 이 여사의 방북 연기는 불가피할 것 같다.

광복 70년, 퇴보하고 있는 남북관계의 돌파구 마련이 절실한 시점이다. 지금 시점에서는 실무적인 접근보다는 정치적인 접근, 미시적 접근보다는 거시적 접근이 요구된다. 특사나 주요 인사의 방북이 하나의 카드일 수 있다. 이 여사의 초여름 방북이 성사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남북 최고당국자의 진정성을 상호 확인하는 메신저 역할을 이 여사가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돌파구로서 반 총장의 평양 방문이 조기에 이뤄지길 기대한다. 반 총장이 박 대통령과 김 제1위원장의 의중을 수렴하면서,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감정싸움으로 치닫고 있는 상황을 정지시키고, 골든타임을 현실화시키는 광복 70주년을 기대한다.


김용현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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