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트럼프 참모의 반란과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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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아침을 열며]트럼프 참모의 반란과 한반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9. 10.

“트럼프 백악관에 합류한 거의 모든 사람들이 갖고 있는 기본적 전제는 ‘이 체제는 작동할 수 있고, 작동하도록 도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트럼프 임기 첫해의 4분의 3이 지났을 뿐인데 고위 참모들 중 이 전제에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이는 말 그대로 거의 한 명도 없었다. 대다수 고위 참모들이 기대할 수 있는 단 하나의 긍정적인 면은 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행정부 고위 관리의 뉴욕타임스 익명 기고에 크게 화가 났다. 자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가짜뉴스’ 매체를 통해 자신의 등에 칼을 꽂았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부하는 계속 암약하겠다고 한다. 무도덕, 무개념, 무지, 충동성으로 똘똘 뭉친 대통령 때문에 나라가 잘못되지 않도록 그가 물러나는 날까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조용한 저항세력의 일원”이 되겠다고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해 언론과 대화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보스는 부하를 면전에서 모욕을 준다. 부하는 뒤에서 보스의 지적 능력을 조롱한다. 이런 얘기는 삽시간에 참모들 사이를 떠돈다. 누가 ‘바보’ ‘얼간이’ ‘멍청이’ ‘초딩’이라고 했더라며 손으로 입을 가리며 킥킥거리는 시트콤 같은 상황이 연상된다.

 

글머리에 인용한 것은 익명 관리의 기고에 있는 내용이 아니다. 올 초 마이클 울프가 쓴 책 <화염과 분노> 에필로그의 한 대목이다. 울프가 인터뷰한 참모에 이 관리가 포함됐는지는 알 수 없다. 1년 전이나 지금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대로 움직이기보단 그의 뜻과 반대로 일하겠다는 사람들이 여전히 행정부 내 있다는 건 확인된다. 이들은 나라를 위한, 역사적 소명의식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오죽하면 고위 관리가 나서 ‘반트럼프 저항운동’을 하겠다고 했겠냐 싶다. 트럼프 대통령에겐 도덕적·정치적 참사다.

 

익명 기고에 고위 관리들 사이에선 ‘낫 미(Not Me·나는 아니다)’ 캠페인이 벌어졌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시작으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댄 코츠 국가정보국장, 벤 카슨 주택도시장관, 니키 헤일리 유엔대사…. 100명 정도가 고위직으로 분류된다는데 그중 30명가량이 결백 선언과 함께 충성맹세를 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밥 우드워드의 신간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 내용이 공개된 다음날이라 백악관은 이미 뒤집어진 상태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이 “지적 장애”라고 했던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에게 ‘반역자(기고자)’ 색출을 위한 수사를 촉구했다. 찾는다고 백악관의 난맥상이 해소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 주목되는 것은 향후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 결정과정이다. 우드워드의 책에선 지난해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탈퇴 서한을 대통령이 서명하지 못하도록 집무실 책상에서 몰래 치우고, 매티스 국방장관은 시리아 대통령 암살 지시에 알았다고 해놓고선 포격 공습으로 전환시킨 일들이 묘사돼 있다. 익명 관리가 말한 ‘조용한 저항’의 사례로 여겨질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 자신의 의견과 지시에 다른 입장을 내는 참모를 어떻게 바라볼까. ‘망해가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쥐새끼’ 취급을 하지 않을까. 이런 난장이 벌어지는 백악관에 선뜻 들어가겠다고 손을 들 사람은 얼마나 될까. 트럼프 대통령이 참모에 대한 의심이 커질수록 가족에 더 의존할 개연성도 있다. 이미 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는 남들이 뭐라건 백악관 선임고문직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를 둘러싼 작금의 상황을 마냥 흥미진진하게 바라볼 일만은 아니다. 특히 한국은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반도의 명운을 좌우할 키 플레이어들 중 한 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사업가 기질 때문이든, 공명심 때문이든 간에 한반도를 놓고 거대한 협상판이 열린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등장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비핵화 논의는 그 자체가 무수한 변수를 동반한 지난한 과정이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 내부의 불확실성까지 겹쳐지는 것은 긍정적이지 않다.

 

한국의 대북특사단 방북으로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 후 제자리를 맴돌던 북·미 비핵화 논의가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메시지에 “함께 잘해나가자”고 하고, 김 위원장의 친서가 도착하지 않았는데도 이를 알리며 기대감을 표출했다. 우드워드의 직설과 참모의 반란으로 연타를 맞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으로 시선을 돌리려 한다고 볼 수도 있다. 트럼프의 외교안보라인에도 ‘레지스탕스’ 그룹이 존재할까. 있다면 이들은 북핵 협상을 어떻게 바라볼까.

 

<안홍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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