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무가베의 생일상
본문 바로가기
경향 국제칼럼

[여적]무가베의 생일상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2. 23.

지난해 6월 짐바브웨에서 웃지 못할 토픽이 떴다. 짐바브웨 중앙은행이 자국 화폐의 사용을 포기하면서 17경5000조 짐바브웨 달러를 미화 5달러에 환전해준 것이다. 35,000,000,000,000,000 대 1, 즉 3경5000조 대 1의 비율이었다. 4억%가 넘은 물가상승률을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미국 달러와 남아공 랜드, 그리고 중국 위안화 등을 공용화폐로 사용 중이다. 한때는 ‘아프리카의 진주’로 통했고, 백금(세계 2위) 등 방대한 광물자원을 지닌 짐바브웨를 저 꼴로 만든 원흉이 있다.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이다.

무가베는 백인이 통치하던 로디지아(짐바브웨의 옛 이름) 해방을 위해 게릴라 투쟁을 벌인 독립영웅이자 건국의 아버지였다. 1980년 독립 후 백인의 땅을 몰수, 흑인들에게 나눠주면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초심을 잃었다. 권력에 취한 무가베는 부정축재와 인권탄압을 자행하기 시작했다. 비서 출신인 부인 그레이스는 전 세계를 돌며 명품 싹쓸이 쇼핑에 골몰했다. ‘구치 그레이스’란 비아냥이 나왔다. 그사이 가뭄이 겹쳐 300만명 이상이 기아선상에서 헤맸다. 그럼에도 생일 때마다 낯뜨거운 용비어천가가 등장하고, 100만달러짜리 생일상이 차려진다. 27일 92회 생일잔치가 열릴 올해도 ‘무가베의 생일은 예수님의 생일과 같다’ ‘만수무강하세요’의 미사여구가 국영신문의 호외판에 실렸다.

최고령 독재자에게 ‘평화로운 정권교체’란 말은 씨알도 먹히지 않는 소리다. “신께서 나에게 긴 수명을 허락했으니 100세까지 대통령을 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날 데리러 오거든 100세가 될 때까지 못 간다고 전해라’라고 노래하는 것 같다. 유력한 후계자로 꼽히는 부인 그레이스도 간단치 않다. ‘내가 100세까지 남편의 휠체어를 밀 것’이라고 대놓고 말한다. 남편 뒤에서 ‘수렴청정을 하겠다’는 노골적인 발언이다. 무가베 같은 독재자가 천수를 누리는 것을 보면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의 유명한 장탄식이 떠오른다. 사마천은 어진 이들은 요절하고 도척과 같은 희대의 도적이 떵떵거리며 천수를 다했던 춘추시대의 세태를 한탄하며 하늘을 우러러 따졌다. ‘도대체 하늘의 도리라는 게 있는 것입니까. 없는 것입니까(天道是耶非耶).’


이기환 논설위원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