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멘의 죽어가는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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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예멘의 죽어가는 어린이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2. 21.

1년 가까이 지속하는 예멘 내전의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유엔의 중재로 지난해 12월 정부군과 반군이 한 차례 만났지만 더 이상 진척이 없다. 협상 기간 동안 무력충돌을 중단하기로 한 약속도 지켜지지 않고 있다. 내전이 장기화하면서 사태는 더욱 꼬여가고 있다. 다양한 무장 세력이 등장하고,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가고 있다. 이라크처럼 석유 부국도 아니고 시리아와 같이 지정학적 요충지가 아니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해결 노력도 집중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들의 피해도 급증하는 추세다.

예멘의 상황이 가히 춘추전국시대라고 할 수 있다. 2011년 아랍의 봄이 발생하면서 예멘에서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이어졌다. 이듬해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이 물러났다. 압두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이 이끄는 과도정부가 들어섰다. 그러나 최종 통합정부 구성 과정에서 정파, 종파, 그리고 부족 간 갈등이 수년간 지속됐다. 이 틈을 타 축출된 살레 전 대통령과 지지 세력은 복귀를 노렸다. 북부의 시아파 후티 반군과 손을 잡았다. 지난해 2월 후티 반군이 수도를 장악하고 하디 정부를 전복시켰다. 이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수니파 동맹군이 하디 정권 재건을 위해 개입하고 있다. 이란도 후티 반군을 지원하면서 수니-시아파 국제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내전과 혼란을 틈타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FP), 이슬람국가(IS) 등 극단주의 무장 세력도 세력을 급속히 확장하고 있다. 알카에다는 예멘 남부 및 동부 지역을 이미 장악하고, ‘영토’를 넓혀가고 있다. 지난해 3월 예멘 지부를 설립한 IS도 후티 반군을 목표로 10여곳 시아파 모스크 테러를 벌이는 등 종파 간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최근에는 수니파인 하디 임시정부에 대한 공격에도 나서고 있다. 임시정부가 위치한 남부 아덴주 주지사를 암살했고, 대통령 관저에도 차량폭탄 공격을 감행했다. 미국은 이들 테러세력 소탕을 위해 무인기 폭격을 이어나가고 있다.


내전으로 미사일 파편에 맞아 숨진 예맨 소년 파리드 샤키_경향DB

얽히고설킨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 다양한 세력이 충돌하면서 사태 해결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치열한 교전과 무차별적 테러가 예멘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책임소재를 가리기도 어렵다는 것이다. 폭력의 주체가 너무도 다양하다. 시아파 반군, 수니파 정부군, 사우디 등의 수니파 이슬람권 동맹군, 알카에다, IS, 미국의 무인폭격기, 부족 민병대, 범죄세력 등이다. 오폭 사건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등 구호단체들의 의료시설들도 연이어 폭격을 당했다. 하지만 어느 편의 미사일인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사태의 장기화로 예멘인들은 공포와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다. 인도주의적 재앙이다. 인구의 약 3분의 1인 760만명이 심각한 식량 부족을 겪고 있다. 어린이 170만여명이 영양실조의 위험에 놓였다. 예멘은 식량자급률이 10%도 채 안되는 식량부족국가다. 내전으로 식량 수입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긴급구호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수백만의 국내외 난민도 발생했다. 무고한 민간인의 인명피해는 늘어만 가고 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내전 이후로 6000여명이 사망했다. 절반 정도가 민간인이고, 이 중 어린이가 1000여명이다.

“땅에 묻지 말아주세요.” 지난해 10월 공개된 한 예멘 어린이의 동영상이 전 세계 누리꾼들을 울렸다. 미사일 공격에 머리를 다쳐 치료를 받던 6살 파리드 샤키의 가느다란 목소리였다. 피투성이가 된 채 수술대에 누워있던 샤키는 겁에 질려 의사에게 애원했다. 죽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이다. 하지만 샤키는 내전 이후 주변의 사람들이 땅에 묻히는 모습을 계속 봐왔던 것이다. 영상이 촬영된 지 며칠 후 샤키는 숨을 거뒀다. 24시간 내 매장해야 하는 이슬람의 전통에 따라 결국 그날 땅에 묻혔다.


서정민 | 한국외대 국제지역 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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