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실패한 거위털 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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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실패한 거위털 뽑기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12. 4.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 마거릿 대처는 최장기 집권(1979~1990년) 기록을 세우며 ‘철의 여인’으로 불렸다. 감세가 포함된 신자유주의정책을 추진했던 그가 실각한 계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세금 부과다. 1980년대 말 영국은 성장이 둔화되고 재정은 악화되는 등 ‘대처리즘’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에 대처는 재정 확보를 위해 ‘인두세’로 불리는 지방세를 도입했다. 기존 영국의 지방세는 땅이나 집 소유자들에게 재산의 정도에 따라 누진적으로 부과되는 부동산세가 있었다. 하지만 인두세는 모든 성인들에게 같은 금액이 부과됐다. 따라서 저소득층의 세율이 더 높은 ‘역진세’다. 인두세 반대 시위가 전국에서 벌어졌다. 대처 정부는 학생이나 저소득층 세금은 줄여 주겠다고 했지만 반발은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집권 보수당 내에서는 대처를 내세워 총선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형성됐고, 대처는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전날인 11월 1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파리 _ EPA연합뉴스

 

정부의 조세정책과 관련된 흔한 경구로 “거위털은 아프지 않게 뽑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방한용 구스다운을 만들기 위해 거위털(세금)을 뽑더라도 거위(납세자)가 안 아프게 해야 지속가능하다는 의미다. 프랑스 절대왕정의 전성기를 이끈 루이 14세 시절 재상 콜베르가 한 말이다. 콜베르는 악화된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면세특권을 누리던 가짜 귀족들을 솎아내고, 소금세와 포도주세 등도 올렸다. 대신 그는 농민과 비귀족들만 부담하던 재산세(타유세)는 삭감해 ‘거위’의 고통을 덜어주는 정책도 병행했다.

 

지금 프랑스에서 그 ‘거위’들의 반발로 대혼란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1년간 유류세를 대폭 올린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내년 1월에도 추가 인상 계획을 밝히자 시민들이 ‘노란 조끼’를 입고 저항하고 있다. 유류세는 역진세까지는 아니지만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같이 내는 세금이다. 파리에서는 시위대의 화염병과 경찰의 최루탄, 물대포가 날아다니며 방화와 약탈까지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집권 초 80%에 달하던 마크롱 대통령의 지지율은 25%까지 급락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국제 유가 추이에 따라 유류세 추가 인상폭과 시점을 조정하겠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성난 민심을 되돌릴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준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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