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유럽 산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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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유럽 산불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7. 31.

그리스에서 초유의 산불이 발생해 아테네 인근 휴양도시 마티(Mati)가 잿더미로 변했다. 절벽 근처 한 건물에선 26명이 한꺼번에 숨진 상태로 발견됐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탈출을 막았고 궁여지책으로 건물 안으로 피신했으나 불지옥을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쫓아오는 불길이 너무 빨라 바다로 피신하기도 전에 죽거나, 구명보트가 뒤집혀 사망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사망자만 100명 가까이 된다. 아비규환의 현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어제 더 안타까운 사실이 알려졌다. 시신들의 유전자를 감식한 결과 아홉 살 난 쌍둥이 소피아와 바실리키 자매가 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발견된 것이다. 이들 네 사람은 서로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꼭 껴안고 있었다고 한다. 자매의 아버지는 앞서 SNS와 방송을 통해 “구조용 보트에서 딸들을 본 것 같다. 연락을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무사귀환의 바람은 허망하게 무너졌다. 

 

그리스 아테네 인근 라피나에서 23일(현지시간) 발생한 산불에 긴급 대피한 주민들이 건물이 불타고 있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이날 화재로 24일까지 최소 50명이 숨졌다. 그리스 적십자에 따르면 해변가 마을 마티에서만 시신 26구가 발견됐다. 구조당국은 라피나 전체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화재진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불길이 거세고 기온이 계속 오르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라피나 _ AFP연합뉴스

 

이번 산불의 생존자는 “불길이 돌진해와 등이 타는 것 같아 살기 위해 바다로 달렸다”며 “폼페이 최후의 날 같았다”고 했다. 서기 79년 이탈리아 남부 베수비오 화산 분화로 폼페이는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1500년이 지난 뒤 운하 건설 공사 도중 전설 속의 도시가 발견됐고 수세기에 걸쳐 발굴이 이뤄졌다. 도시 유물은 발견됐으나 간간이 빈 공간이 있을 뿐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공간에 석회를 부어보니 사람과 개 등 형상이 드러났다. 일상생활을 하다 불에 타 죽은 참혹한 모습들이었다.

 

그리스뿐이 아니다. 지구촌 곳곳이 산불로 화염지옥이 되고 있다. 특히 스웨덴에서는 44곳에서 화재가 발생해 정부가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한 상태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대형 산불로 곳곳에서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전문가들은 산불이 기후변화에 따른 폭염의 결과라고 말한다. 산불 발생에는 30도 이상의 기온과 30% 이하의 습도, 시속 30㎞ 이상의 풍속이라는 ‘30-30-30 법칙’이 있다. 그런데 유럽과 북미가 기후변화로 혹서·가뭄·바람 등 ‘불의 기후’가 됐다는 것이다. 폼페이의 최후가 자연재해라면 그리스 마티의 참화는 인재다. 기후변화 대책은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발등의 불’이 됐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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