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리포트]미 ‘패권 전략’ 종속되는 한국의 개발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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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워싱턴리포트]미 ‘패권 전략’ 종속되는 한국의 개발원조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6. 20.

21~25일 미국을 방문하는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일정 중에 특이한 행사가 하나 끼여 있다. ‘한·미 개발협력 의향서(MOU) 체결’이 그것이다. 외교부는 이를 “양국 간 공적개발원조(ODA) 협력강화와 정책 선진화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한·미가 공동으로 개발원조사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공동 개발원조는 원조효과를 높이고 규모가 큰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원조철학이 맞는’ 개발원조의 선진국들 사이에 흔히 이뤄지는 원조 형태다. 하지만 한·미 간에는 사정이 다르다.

미국의 개발원조는 세계 최대 규모지만 질적으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냉전시대부터 인도적 목적이 아닌 ‘미국의 패권과 전략 추구’라는 목적으로 활용해왔기 때문이다. 지금도 미국의 개발원조는 지나치게 정치·안보 지향적이며 이를 위해 미국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만 엄청난 물량을 투입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미국의 개발원조가 미국의 세계 패권 유지를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고 비판한다.

한·미 공동 개발원조사업은 미국이 돈을 대고 한국이 사업을 하는 형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이 사업대상을 정하는 경우가 많아질 것이란 말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개발 경험을 토대로 한 한국형 원조 모델 창조’와는 거리가 멀다. 또 미국의 세계전략에 활용될 위험성도 있다. 세계 곳곳의 반미 감정을 감안하면 공동 사업은 우리에게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2008년 OECD 개발원조위 한국가입 검토회의

그럼에도 정부가 이를 추진하는 것은 ‘한·미동맹 강화’ 차원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인 2008년 3월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의 주도로 ‘한·미동맹 강화를 위한 공동 ODA’를 추진했다. 당시 경향신문이 이를 정면으로 비판하자 정부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잡아뗐다.
하지만 2009년 11월 미국을 방문한 박영준 당시 국무차장이 미국 국제개발처(USAID)에 공동추진을 제안함으로써 결국 본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김 장관이 체결하려는 의향서는 오매불망 한·미동맹만을 생각하는 이명박 정부의 오랜 집념의 결과다.

개발원조는 인도주의에 입각한 빈곤퇴치, 인권·환경 개선 등의 철학을 담고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경우엔 그렇지 않다. 이른바 ‘자원외교’를 내세워 빈국이 아닌 자원부국에 집중했고 외교 전략의 도구로 활용했다. 정권의 홍보 수단이기도 했다. 2009년 11월 원조선진국 클럽인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했을 때 정부는 “DAC 가입으로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됐고 원조선진국 반열에 올랐다”고 자화자찬했다. 명백한 사실 왜곡이다.

개발원조위 가입은 늦었지만 한국은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주는 나라’였다. 또 전임 정부 시절부터 가입을 위해 꾸준히 준비해온 노력이 비로소 이명박 정부에 이르러 결실을 맺은 사실은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더욱이 개발원조위 가입 당시 한국은 국제적 기준을 모두 충족한 것도 아니었다.
앞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개선해 회원국으로 손색없는 개발원조사업을 시행하겠노라고 약속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져 원조선진국 칭호를 ‘가불’받은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공적개발원조는 그 나라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얼굴이다. 이렇게 어렵사리 개발원조위 회원국이 된 한국이 기껏 선택한 게 한·미 공동 사업이라는 사실을 국제사회가 어떻게 바라볼지 궁금하다. 꼭 미국과 함께 ODA를 하고 싶다면 미국의 대북 식량지원에나 동참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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