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메모]‘천안함’에 갇힌 북핵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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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기자메모]‘천안함’에 갇힌 북핵 외교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4. 14.

정부가 상정하는 6자회담 재개 조건 속에 ‘천안함과 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가 포함돼 있는지를 명확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현재 없는 것 같다.

문제를 지휘하는 위성락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지난 12일 워싱턴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사과가 6자회담 재개에 직접 연결돼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잠시 후 부연설명을 통해 “전제조건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고 서로 영향을 주는 요소”라고 정정했다.

혼란은 청와대와 외교부의 엇박자에서 비롯된다. 당초 남북대화를 ‘남북간 이슈를 다루는 대화’와 ‘비핵화를 위한 남북대화’로 분리하자는 아이디어는 지난해 하반기 외교부가 내놓은 것이다. 천안함 사과 문제에 매달려 국제적인 틀에서 논의되는 6자회담을 우리만 거부할 수 없다는 현실적 인식에서 나온 창조적 구상이다.
지난 1월 외교부 고위당국자는 “6자회담 트랙에서는 천안함·연평도 문제가 직접적 조건이 아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일 이명박 대통령이 “북한이 천안함·연평도에 대해 진정한 자세로 대답해야 6자회담도 될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못을 박은 뒤 모든 게 헝클어졌다.

정부는 천안함 사과를 전제로 하지 않는 남북간 비핵화 회담을 이미 북한에 제의한 상태다. 만약 남북이 이 문제로 만난 자리에서 천안함 사과를 다시 고집할 경우 ‘골대’를 옮기는 셈이다. 설령 6자회담을 재개할 뜻이 없다면, 말을 뒤집어 천안함 핑계를 댈 것이 아니라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문제삼는 게 훨씬 전략적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외교적 회색지대’가 사라지고 퇴로 없는 협상을 해야 할 외교부의 처지는 과거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에 매달려 북핵 외교를 그르친 일본을 연상케 한다. 천안함 사과 문제는 한국의 북핵 외교를 지배하는 괴물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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