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리포트] 또 다른 빈 라덴 만드는 ‘닫힌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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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워싱턴 리포트] 또 다른 빈 라덴 만드는 ‘닫힌 미국’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5. 9.
지난해 특파원으로 발령을 받고 16년 만에 다시 찾은 워싱턴에서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배타적으로 변해버린 미국 사회의 분위기였다. 20대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어서 항상 친숙하게 여겨졌던 도시지만 예전의 워싱턴이 아니었다. 자유롭고 여유가 넘치던 미국 특유의 분위기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매사를 번거롭게 만드는 고도의 보안점검과 외국인을 향한 경계의 눈빛이 불편했다. 등록된 주소가 없으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고, 일상 생활을 통제하는 복잡하고 까다로운 법규정이 수도 없이 많이 생겼다. 특히 외국인들에 대한 규제는 감시에 가깝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로 깐깐했다. 버지니아 교통국에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으러 갔을 때는 20년 전에 있었던 사소한 교통사고와 17년 전에 살던 마지막 집 주소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신분을 의심받았다.
 
미국 소년이 9·11 테러 추모의 벽 앞에서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다. | AFP연합뉴스 | 경향신문DB
 
미국을 이렇게 바꿔놓은 것은 2001년 9·11 테러였다. 인류사회를 종종 산업혁명 이전과 이후로 구분하는 것처럼 9·11 ‘이전’과 ‘이후’의 미국은 완전히 다른 사회다. 일반인들의 의식도 변했다. 지하철역에서 수상한 가방이 발견돼 1시간씩 열차 안에 갇혀 있으면서도 묵묵히 불편을 감수하고, 휴가 기분을 망치는 인권유린적 공항 검색대 몸수색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2001년 이전에는 어림도 없던 일들이다.

이런 것이 가능한 이유는 9·11 테러 이후 ‘미국은 전쟁 중’이라는 인식이 국민들에게 깊이 각인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오사마 빈 라덴이 사살됐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시민들은 백악관과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에 몰려들어 폭죽을 터뜨리며 환호했다. 

테러리스트라고는 하지만 인간의 죽음에 환호하는 모습이 보기 좋지 않다는 지적은 외국에서나 통할 수 있는 말이다. 전쟁 중에는 당연한 행동일 뿐이다. 죽이지 않으면 죽을 수 있는 전쟁 중에 설사 비무장 상태였더라도 적군을 사살한 것은 정당하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 일상의 불편함은 희생할 수 있어야 하고 외국인의 인권이 조금 무시돼도 어쩔 수 없다. 이것이 전쟁을 치르고 있는 미국인들의 인식이다.

빈 라덴이 죽었다고 해서 미국 사회가 9·11 테러 이전으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오바마는 빈 라덴 사살에 대해 “정의가 실현됐다”고 했을 뿐 ‘승리’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았다. 미국을 겨냥한 테러의 뿌리를 뽑을 때까지 전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오바마는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은 이슬람에 대한 전쟁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테러리스트는 이슬람에게도 적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난 10년간 벌어진 미국과 이슬람의 충돌, 미국 사회에 만연된 이슬람에 대한 공포와 경계는 대체 무엇인가. 빈 라덴이 미국은 물론 이슬람에게도 적이라면 왜 이슬람은 그의 죽음을 ‘정의의 실현’이라고 부르지 않는가. 

지금 중동과 아프리카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와 알카에다 조직원은 현실의 부조리를 자각한 이슬람 민중이라는 점에서 다를 게 없다. 다만 이들의 차이가 있다면 ‘반미’의 이념이 있느냐 없느냐일 뿐이다. 이들이 민주화 세력이 될지, 테러리스트가 될지는 미국의 선택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시점은 모든 테러리스트를 소탕했을 때가 아니라 그들이 미국을 ‘테러 대상’으로 여기지 않게 됐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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