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리포트] 핵안보 - 핵안전, 더이상 별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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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워싱턴리포트] 핵안보 - 핵안전, 더이상 별개 아니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3. 22.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성물질 누출 사고는 원자력이 과연 인류의 미래와 함께할 수 있는 에너지인지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전 세계에 제공했다. 치명적인 독성 물질을 내뿜으며 타들어가는 핵연료봉을 어떤 수단으로도 제어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금단의 초자연적 에너지를 개발한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가졌다.
 
원전 수소폭발로 폐허로 변해버린 후쿠시마 원전 1호기 | AP연합뉴스 | 경향신문DB

공교롭게도 기후변화와 에너지원 고갈이라는 난제에 부닥친 세계 각국이 원자력에 다시 눈을 돌리면서 이른바 ‘원자력 르네상스’가 도래하려는 시점이었다. 이번 사고로 각국은 원자력의 위험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면서, 원자력이 풍력·태양력·바이오매스 등과 함께 신재생 에너지의 항목에 포함되는 것이 타당한지를 돌아보았다. 또 일본 원전의 사고원인이 무엇인지, 원자력 발전의 어떤 과정에서 결점이 있었는지를 규명하기 전에는 현 상태에서 더 나가지 말아야 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그러나 신흥 원자력 강국을 자처하며 원전수출을 국가적 전략으로 삼고 있는 한국의 반응은 독특했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의 일성은 “우리 원전은 안전하다”였다. 인간에게 원자력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목전에 있음에도 한국의 관심은 엉뚱한 곳으로 향하고 있다.

일본의 사고 원전이 가동된 지 40년이 지난 노후 시설임을 감안하면 한국의 원전이 상대적으로 사고 확률이 낮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번 사고의 본질은 어떤 원자로가 더 안전한가를 따지는 데 있지 않다. 일본의 비등형경수로보다 한국형 가압경수로가 구조상 더 안전하다느니, 우리나라는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의 위험이 적다느니 하는 말들은 이번 사태가 인간에게 던진 진지한 질문에 대한 동문서답이며, 경박함의 표본이다. 마치 학급 전체를 꾸중하는 선생님 앞에서 “난 안 그랬는데요”를 외치는 초등학생과 다를 바가 없다.

이번 사고로 세계가 당장 원자력을 포기할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화석연료에만 의존할지, 아니면 원자력을 계속 이용해야 할지 장기적 안목에서 판단해 보겠지만 결국 원자력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렇다면 결국 안전이 문제다.

이번 사고는 그동안 별개의 것으로 인식해왔던 핵 안보(nuclear security)와 핵 안전(nuclear safety)의 경계를 허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는 그동안 핵물질이 테러리스트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는 핵 안보에 치중해왔다. 핵 안전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원전의 전원공급이 차단된 상태에서 원자력 안전의 최후의 보루인 비상용노심냉각장치(ECCS)가 망가지거나 사용후 핵연료봉의 관리가 잘못되면 원자로의 구조·연식과 무관하게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사고는 똑똑히 보여줬다. 핵물질을 구해 테러를 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게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테러리스트도 깨달았을 것이다.

내년 핵안보 정상회의의 주최국으로서 한국은 핵 안보와 핵 안전이 별개의 사안이 아니라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임을 인식하고 이 문제를 적극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우리 원전이 남의 것보다 더 안전하다”는 낯뜨거운 주장을 하기에 앞서 이번 사고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먼저 숙고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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