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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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프렌치 패러독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9. 10.

목수정 작가·프랑스 거주

한국과 프랑스는 먼 나라다. 양국이 서로의 뉴스를 전할 때 등장하는 뉴스들은 상대국 내에서의 중요도가 아니라 자극성의 정도에 따라 걸러진다. 한국에서 근 1년간 가장 비중있게 다뤄진 프랑스 관련 뉴스는 아트사커의 몰락이었다. 남아공월드컵 최대의 이변으로 꼽혔던 프랑스팀이 부진에 이어 졸렬한 내분으로 내달릴 때, 한국 신문들은 이를 1면에 대서특필하기도 했다.

프랑스 언론이 좋아하는 한국은 남한보다는 북한이다. 남쪽보다는 북쪽에서 자극적이고 위험도 수위가 높게 관측되는 뉴스들이 더 자주 생산되기 때문이다. 최근 가장 강도 높게 다뤄진 남한발 뉴스가 있다면 천안함 사태, 그리고 컴퓨터 게임을 하다가 갓난아이를 죽도록 방치한 부부이야기 정도다. 양국이 그다지 관심없어 하는 공통된 뉴스가 있다면 집회나 시위, 파업이다. 2년 전 촛불을 든 시민들의 저항이 대한민국을 100일 넘게 뒤흔들었을 때, 프랑스 언론의 반응은 시큰둥 그 자체였다. 한국언론들도 프랑스에서의 시민저항을 다루는 걸 재미없어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어쩌랴. 지금 프랑스 전체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이슈가 있다면, 바로 이것 총파업인 것을…. 집회는 주로 토요일에 하지만, 파업은 당연히 평일에 한다. 지난 7일 총파업이 있었다. 선생들이 대부분 파업했고, 아이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RER(전철)도 거의 끊겼다. 총파업에 참여한 사람의 수는 250만명으로 집계되었고, 이 총파업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는 70%를 상회했다. 이쯤 되면 거리에서 느껴지는 지지도는 물론 90%를 웃돈다. 이토록 저항없이 가뿐하게 치러지는 총파업을 이끌었던 이슈는 연금개혁이다. 별거 아닌 듯싶다. 사르코지는 집권초부터, 현재 60세로 되어 있는 정년을 2년 연장하려고 한다. 이게 뭐가 나쁘다고 저 난리인가 싶을 수 있다.

그런데 이건 만 18세부터 일한 사람이 연금을 받으려면 44년간 쉬지 않고 일을 해야 62세에 가서 비로소 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생 단 한시기의 실직도 없이 연금을 납부할 수 있는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18세부터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실질적으로는 70세가 거의 되어서야 이 연금을 탈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당연히 노동자들은 한 발자국도 물러설 수 없다. 사회당의 세골렌 루아얄은 이 개혁법안은 순전히 고용주의 이해만을 대변한 법안이라고 일축한다. 그녀의 시각은 이 법안을 둘러싼 노동자 전체의 시각이기도 하다.

총파업이 있던 날 대규모 시위를 휩쓴 슬로건은 “나는 계급투쟁을 한다!”였다. 정부는 연금제도를 이대로 지속하다간 금고가 곧 바닥난다고 엄살을 떨고 있지만, 수조억원의 주체할 수 없는 로레알사의 상속녀 베탕쿠르를 둘러싼 뇌물스캔들은 “베탕쿠르의 금고를 털어 연금을 지급하라”는 직설적인 슬로건을 가능케 한다. ‘우리를 착취해온 자들의 금고를 털어라. 더 이상은 물러설 수 없다.’ 이것은 명백한 계급투쟁이었다.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연금개혁은 이명박 대통령의 4대강과도 같은 것이다. 자신의 정치생명 전체를, 명예를 건 국민과의 대결이며, 그들이 저지른 모든 실정이 구축한 불신이 정권 최대 사업에 대한 최대치의 저항을 부르는 중이다.

신나는 총파업이 거리를 휩쓸고 난 다음날 카페로 달려가 신문들을 찾았다. 그런데 단 하나의 신문도 찾을 수 없었다. 기자들도, 인쇄공들도 모두 같이 파업을 했기 때문! 헉! 이 철저한 총파업에 대한 충성도를 찬양해야 하는 걸까. 아님 이 중요한 순간, 총파업 결과를 속속들이 전파해야 할 언론의 임무를 방기한 그들을 질타해야 하는 것일까. 언제나 예기치 않은 대목에서 뒤통수를 쳐주시는 프렌치 패러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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