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갈등 논란 휩싸인 미국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
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박영환의 워싱턴 리포트

인종갈등 논란 휩싸인 미국 국가 ‘성조기여 영원하라’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9. 2.

재미없는 대선전에 지친 미국인들에게 최근 논란거리가 하나 등장했다. 미국 프로풋볼리그(NFL) 선수가 제기한 이슈로, 인종차별적 가사를 담은 국가(國歌)를 존중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ers) 쿼터백 콜린 캐퍼닉(28)은 지난 26일(현지시간) 시범경기에서 국가가 연주될 때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나는 일어서서 국가를 부르고 국기에 경례할 수 없다. 나는 백인 세계에 살고 있는 한 명의 흑인이다”라고 말했다. 캐퍼닉은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백인 부모에게 입양돼 자랐다.

 

캐퍼닉은 뉴욕타임스에 “나는 흑인과 유색인종을 억압하는 나라의 국기에 존경을 표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저항은 국가 논란으로 번졌다. 온라인 매체인 인터셉트는 캐퍼닉의 저항은 정당하다면서 “현 국가는 노예제에 대한 축가”라고 주장했다. 흑인 싱어송라이터이자 아카데미상, 그래미상 수상자인 존 레전드도 트위터에서 ‘성조기여 영원하라’는 국가로서 적절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미국이 1931년부터 국가로 사용하고 있는 ‘성조기여 영원하라’는 영국 독립전쟁 당시인 1814년 프랜시스 스콧 키가 맥헨리 요새 전투 승리를 보고 쓴 시에 곡을 붙인 것이다. 키는 노예제 폐지에 반대했고, 흑인은 “열등한 인종”이라고 주장한 인물이다. 일반적으로 잘 부르지 않는 3절에는 “그 어떤 피난처도 용병들과 노예들을 도주의 공포와 무덤의 암흑으로부터 구해주지 못했다”는 가사가 있다. ‘노예’라는 단어가 등장할 뿐 아니라 내용도 흑인에 극히 적대적이다.

 

흑인 농구 스타 출신 칼럼니스트 카림 압둘 자바는 CNN에 출연해 “캐퍼닉의 행동은 헌법정신인 언론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해석해야 한다”고 옹호했다.

 

하지만 언론과 소셜미디어의 전체적인 반응은 호의적이지 않다.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끔찍하다”고 공격했다. 언론들은 해외 파병 미군 어머니들을 출연시켜 “나는 국가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목소리를 내보내고 있다. 애국주의 앞에서 옛날이야기를 담은 가사 한 토막에 대한 문제 제기가 힘을 발휘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미국 국가를 바꾸자는 주장은 처음 제기된 게 아니다. 호전적인 가사와 따라 부르기 어려운 선율 등에 대한 지적이 적지 않았다. 9·11 테러 이후 많이 불리는 ‘아름다운 아메리카(America the Beautiful)’와 ‘아메리카에 은총을(God Bless America)’은 자주 대안으로 거론됐다. 제2의 국가로 불리는 ‘아름다운 아메리카’는 1893년 캐서린 리 베이트가 매사추세츠에서 콜로라도까지 여행하며 미국의 자연과 미국인들에 대해 쓴 가사를 담고 있다. ‘아메리카에 은총을’ 역시 9·11 이후 여러 행사에서 불린다. 뉴욕 양키스 야구장에 이 곡이 흐를 때 미국인들이 느끼는 감동은 대단하다. 미국 사회가 이번 기회에 좀 더 자비롭고, 평화로운 노래를 국가로 선택하는 문제를 논의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하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