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한국 안보의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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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정동칼럼]한국 안보의 딜레마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1. 21.

북한이 우리의 패트리엇 대공미사일과 공중급유기 도입을 남북군사합의서 위반이라고 항의했다. 남북군사합의서에는 “쌍방은 상대방을 겨냥한 대규모 군사훈련 및 무력증강 문제 … 등에 대해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가동하여 협의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되어 있다. 북한의 문제 제기는 부지불식 간에 우리의 시각을 남북 간 군사문제를 넘어 미·중 간 패권경쟁으로까지 확대시키고 있는 듯하다.

 

정부와 군은 북한의 문제 제기에 당황한 듯하다. 국방부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가 가동되면 대규모 군사훈련과 무력증강에 관한 내용의 수정을 요구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북한이 미·중 간 패권경쟁 상황에도 대비해야 하는 우리의 입장을 이해해주고 선선히 물러설 것 같지는 않다. 자칫하면 심각한 의견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 안보 담당자들이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것은 실망스럽다. 군사력 건설보다 중요한 것은 상황을 예측하고 판단하는 지적 능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기본합의서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군사적 긴장완화를 이야기하면서 등 뒤에 칼을 숨기고 있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이다. 먼저 합의서 내용에 집중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상대방을 겨냥한’이라는 내용을 모든 군사력 건설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지나치다. 군사력 건설은 통상 공격용과 방어용으로 나뉜다. ‘상대방을 겨냥한’이라는 의미를 고려하면, 방어용 군사력 건설은 남북군사합의서의 대상이 아니다.

 

반세기 넘게 적대관계를 유지한 남과 북이 말 한마디 글자 한 줄로 평화에 도달할 수 있을까? 특히 북한의 장사정포가 서울을 언제라도 포격할 수 있고, 남한 전역을 공격할 수 있는 미사일이 수천발이 되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선의만을 믿을 수는 없다. 현존하는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그것이 방어적 목적의 무기라면 의문의 여지가 없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방어적 목적의 패트리엇이 아니라, 북한이 언제라도 발사할 수 있는 공격용 미사일이다. 남북군사공동위원회가 개최된다면 제일 먼저 상대방을 위협하는 공격용 무기를 제거하는 방안이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둘째, “협의”라는 말의 의미이다. 협의는 서로 의견을 나눈다는 뜻이다. 잘되면 합의에 도달할 수 있고, 잘 안되면 상호 입장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 된다. 아직 남북 간 신뢰구축이 충분하지 못한 상황에서, 상대방을 겨냥한 무력증강에 대한 입장 차이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도 상당한 진전이다. 유감스럽게 남과 북은 아직까지 그런 대화조차 하지 못했다. 북한의 문제 제기에 우리 군이 전전긍긍하는 것은, 남북군사합의서의 내용 때문이 아니라 조항의 해석능력 부족 때문이다.

 

일에도 순서가 있다. 지금 단계에서 남북한의 노력은 남북기본합의서가 규정하고 있는 군사분계선과 NLL 인근에서의 군사적 충돌 방지에 집중되어야 한다. 서로 수용할 수 있고 지킬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서 신뢰를 쌓아가는 단계적 접근이 필요하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신년사에서 군사적 긴장완화가 한반도 전체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했다. 남북군사합의의 성과를 확대시키고자 하는 취지로 이해된다. 그러나 비무장지대의 군사적 긴장완화와 한반도 전체의 안보문제를 혼동해서는 안된다. 남북 간 적대적 관계 해소가 우리 안보의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미·중 간 패권경쟁으로 인한 안보불안에 대비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 정부가 해·공군 위주의 군사력 건설을 내용으로 한 국방개혁을 추진한 것도 이런 안보상황 때문이다. 공중급유기를 확보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북한의 위협만을 고려한다면 굳이 공중급유기까지 확보할 필요가 없다.

 

미·중 간 패권경쟁은 현재 진행형이다. 역사적으로 패권경쟁으로 인한 군사적 충돌은 가장 약한 힘의 고리에서 일어난다. 중국은 군항기로 KADIZ를 침입하는 한편, 서해에서도 해군으로 무력시위를 감행하고 있다. 부지불식 간에 한반도는 중국의 패권도전 무대가 되어가고 있다. 약한 힘의 고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을 가져야 한다.

 

북한의 문제 제기는 의도치 않게 우리가 처한 안보현실을 명확하게 인식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우리는 남북 간 군사적 긴장완화와 미·중 간 패권경쟁으로 인한 안보불안이라는 딜레마를 헤쳐나가야 한다. 그런 점에서는 북한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할 것이다. 큰 범주에서 보면 남북한은 이미 한배를 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설 | 예비역 준장·전 육군군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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