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렬의 신한반도 비전]북 비핵화 단계론과 ‘트럼프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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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조성렬의 신한반도 비전]북 비핵화 단계론과 ‘트럼프 리스크’

by 경향글로벌칼럼 2019. 9. 17.

한반도에 또다시 대화의 훈풍이 불고 있다. 9월9일 오후 11시30분 북한 최선희 제1부상은 9월 하순에 북·미 실무회담을 열자는 담화를 발표했고, 그 다음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했다. 최선희의 담화는 공교롭게도 아프간 평화협정의 체결을 하루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협상 중단을 선언한 뒤에 나온 것이다.


이런 일들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다. 미국의 아프간 평화협상 파기는 북한에 위기로 느껴진 것 같다. 작년에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된 볼턴이 리비아 해법을 주장하고 5월12일 이란 핵합의 파기를 앞두자, 김정은 위원장이 다급히 다롄으로 달려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지원을 요청했던 일을 연상하게 한다. 트럼프도 북한이 대화에 나올 뜻을 밝히자 볼턴이라는 걸림돌을 제거한 것이다. 트럼프는 볼턴을 경질하면서 그가 리비아 해법을 고집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아프간 평화협상이 중단된 마당에 트럼프로서도 한반도 비핵화 카드는 외교업적으로 살리고 싶었을 것이다.


초강경파인 볼턴을 경질함으로써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은 어느 때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양측의 입장차이가 여전히 커서 협상결과를 낙관하기는 이르다. 북한은 트럼프 리스크 탓에 단계적 접근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명의로 담화를 발표해 이번 실무협상에서 대안을 갖고 오지 않으면 북·미 대화가 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고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볼턴의 경질로 미국이 실무협상에서는 ‘유연한 접근법’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지만, 3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그대로 적용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트럼프로서는 내년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어 미국 내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장애물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것이 트럼프 리스크이다. 첫 번째 트럼프 리스크는 트럼프가 내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할지의 불확실성에 따른 것이다. 만약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다면, 새로운 민주당 정부와 비핵화 협상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북한으로서는 섣불리 트럼프 1기 행정부와 ‘빅딜’에 합의하기를 꺼리는 이유다. 두 번째 트럼프 리스크는 설사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고 해도 현재와 같이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 때 합의한 이란 핵합의를 파기한 경력이 있는 트럼프가 재선된 뒤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러한 두 가지 트럼프 리스크를 우려해 북한은 단계적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작년 3월26일 김정은 위원장은 북·중 정상회담 때 단계적, 동시행동적 접근을 제시했다. 단계적 접근법은 미래핵, 현재핵은 트럼프 제1기 행정부와 합의하고 이행하지만 과거핵(핵무기, 탄도미사일)은 2021년 1월에 들어설 미국 행정부와 협상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일부 전문가들이 북한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요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트럼프 리스크와 북한의 비핵화 단계론을 극복하고 3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2월 말 하노이 회담에서 미타결된 쟁점은 크게 ‘비핵화의 공동정의’와 ‘추가조치’에 관한 것이다. 


비핵화의 대상과 범위에 대해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프로그램, 중장거리 및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포기를 주장한다. 반면 대북 강경론자들은 여기에 더해 생화학무기, 단거리·중거리 탄도미사일도 포함시키라고 요구한다. 핵시설 이외의 추가조치에 대해 북한은 과거핵을 차기 미 행정부와 협상하겠다고 고집한다. 반면 볼턴과 같은 초강경파는 리비아 방식처럼 당장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의 해외이전을 주장하고, 미국 내 협상파는 어느 시점에서 포괄적 신고를 할 것인지에 대한 약속을 하라고 요구한다. 


이처럼 두 가지 쟁점을 둘러싸고 북·미 양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에, 실무회담을 넘어 연내 3차 정상회담이 열려도 한반도 비핵화 로드맵을 타결짓기 쉽지 않다. 연내 타결을 위해선 미국뿐만 아니라 북한도 셈법을 바꾸어야 한다. 미국은 비핵화의 대상과 범위를 확정지어 불확실성을 없애야 한다. 북한도 어느 시점에 과거핵의 포괄적 신고를 할 수 있는지 조건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북·미 실무협상을 앞두고 한·미 정상회담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직접 설득하고, 대북 특사나 번개회동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을 설득할 수 있다면 한반도 비핵화에 큰 진전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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