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우주 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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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오관철의 특파원 칼럼

중국의 우주 굴기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7. 5.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중국의 우주인들이 자동·수동 도킹 실험을 마친 뒤 무사히 지구로 귀환했다. 경제력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중국이 과학기술 분야에서도 미국을 무서운 속도로 따라잡고 있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과시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유인 우주선 선저우(神舟) 9호와 도킹한 톈궁(天宮) 1호는 실질적인 우주정거장은 아니다. 우주정거장 기술 확보를 위해 쏘아올린 실험용이다. 

중국은 2020년쯤 우주정거장 건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G2(미국과 중국을 일컫는 말) 우주패권 경쟁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중국과 미국의 우주기술 격차는 여전히 크다. 미국은 지금부터 약 40년 전인 1973년에 우주정거장 스카이랩을 쏘아올렸다. 아폴로 11호가 닐 암스트롱을 태우고 달나라에 상륙한 것이 1969년이다. 중국은 유인 우주선을 2020년 이후에나 달에 착륙시킬 목표를 갖고 있다.


중국 우주선 선저우 9호가 발사되고 있다. (경향신문DB)



중국이 세계 수준의 기술을 선보일 때마다 등장하는 것이 중국 위협론이다. 군사적 목적으로 첨단 과학기술을 활용한다면 동북아 안보, 나아가 세계 평화에 위협적 세력으로 등장할 것이란 요지다. 우리로서는 눈부신 중국의 우주기술 발전을 축하만 할 일은 아니다. 우주 개발 목적이 과학기술의 증진을 통해 군사력을 강화하려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중국의 우주 패권 야욕을 면밀히 주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중국 위협론에만 함몰돼선 곤란하다. 조안 존슨 프리스 미국 해군대학 교수는 CNN에 출연해 “만약 중국을 태생적으로 미국의 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친구들을 가까이 하고 적들은 더욱 가까이하라’는 격언을 기억하라”고 조언했다. 미국 의회가 항공우주국(NASA)의 중국과의 협력을 금지한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며 중국의 우주개발 목표를 잘 이해하기 위해 소통에 노력해야 한다며 충고한 말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중국이 어느날 갑자기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권의 우주 강국으로 올라선 것이 아니란 점을 알게 된다. 1950년대 중반부터 과교흥국(科敎興國·과학교육으로 국가를 발전시키는 전략)을 꾸준히 밀고 온 결과인 것이다.


중국의 미사일 연구와 우주 개발의 대부 격인 원로 과학자 첸쉐썬(錢學森)이 2009년 9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기 전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은 3번이나 병석에 있는 그를 문병했다. 후진타오(胡錦濤) 주석도 두 차례 병문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그의 장례식을 공산당 중앙위원회 차원에서 거행하면서 마지막까지 국보급 과학자로 예우했다. 

물론 우주선 발사 같은 첨단 기술은 수천, 수만명에 이르는 과학자의 합작 결과이지 특정인의 공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실제 중국이 인재 유입에 적극 나서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던 중화권 과학자들이 우주개발에 힘을 보탰다. 하지만 중국 지도자들의 과학자들에 대한 애정과 예우가 남달랐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듯하다. 중국의 최고 지도자들이 국가의 원로급 과학자들을 찾아 문안하면서 과학기술과 이공계를 중시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사회에 전파시키는 데 앞장서온 것이다. 

장쩌민과 후진타오는 각각 전기, 수리공정을 전공한 이공계 학도였고 차세대 지도자인 시진핑(習近平)도 칭화대 공정화학과를 졸업한 이과 출신이다. 중국의 대학 졸업생 600여만명의 40%가량이 이공계 출신이란 점도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한 저변이 탄탄함을 보여준다.


중국은 과학자들에게는 사상도 당성도 묻지 않았다. 중국의 우주 기술이 민간산업으로 퍼져나가면 중국의 산업 경쟁력은 더욱 막강해질 것이다. 흔히 과학기술은 국가 지도자의 관심을 먹고 자란다고 한다. 중국의 ‘우주 굴기’를 바라볼 때마다 과학기술부가 폐지되고 인재들이 이공계를 외면하고 있는 국내의 현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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