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외교와 중국 위협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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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의 외교와 중국 위협론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9. 26.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센카쿠(尖閣)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을 둘러싼 중국의 강경 대응을 보면 화평굴기(和平굴起)는 어디로 갔는지 의문이 든다. 중국은 평화로운 부상이란 의미의 화평굴기를 중요한 대외정책의 근간으로 삼아 왔다. 


베이징 외교가에서는 “지난 10년 4세대 지도부는 집권 중 평화로운 부상이란 개념에 집착했지만 이젠 반대로 바뀌고 말았다”는 혹평이 나온다. 굴기 앞에 화평을 내세웠다면 이젠 평화 없이 굴기하려는 의지만 엿보인다는 것이다.


 주변국 가운데 오로지 대만과 밀월 관계를 구가하고 있을 뿐 중국은 다른 나라들을 힘으로 누르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센카쿠 분쟁 해법을 둘러싸고 일본이 중국과 대화를 요청하는 모양새여서 중국은 내심 강경대응의 효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센카쿠 국유화를 단행한 일본에 적지 않은 갈등의 책임이 있긴 하나 중국이 잃은 것은 결코 적지 않아 보인다.


중국 청두의 이토요카도 쇼핑센터 앞에서 ‘일본 상품 불매’ 운동이 벌어졌다 (경향신문DB)


중국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무수하게 밝혀 왔다. 하지만 센카쿠 분쟁을 통해 중국은 영토문제에서 소통보다 힘의 외교를 우선시할 것이란 전망을 부인하기 어렵게 됐다. 패권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제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굳어져 가고 있다. 중국은 지난 10년간 소프트파워를 증진시키고 중국의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자국을 위협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세계인들의 인식을 바꾸는데 적지 않은 성공도 거뒀다. 하지만 센카쿠 분쟁으로 중국 위협론은 더욱 횡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국이 일본에 전쟁 불사를 외치는 것은 급속한 경제발전 과정에서 각종 모순이 누적되면서 쌓인 사회적 불만을 반일 시위로 분출시키려는 정치적 계산도 작용했다. 민족주의는 정치 지도자들이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 중 하나다. 그러나 민족주의에 과도하게 기대는 것은 체제불안 요소가 적지 않은 중국으로서는 호랑이 등에 올라타는 격이 될 수 있다. 민족주의를 상업화하는 언론의 부작용도 여전하다. 10년 만의 권력 교체를 앞두고 대일 강경외교에서 득을 보려는 세력의 입김도 분명 일본을 압박하는데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예컨대 군사력이 만만치 않은 일본과 무력 충돌의 가능성이 1%만 있다고 해도 군 지도부를 대거 교체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닐 것이란 주장이 먹힐 수 있다.


국내적으로 경제문제에 신경쓰느라 대외적으로 다른 나라와 시비붙을 틈도 없다던 중국으로서는 스스로 자신의 말을 뒤집고 있다. 일본은 중국 시장 의존도를 낮추려 할 것이고 동아시아 영토분쟁은 이 지역에 대한 외국인 투자에 불안 요소가 될 게 뻔하다. 정치는 차갑고 경제는 뜨겁다는 것이 지난 몇 년간 중·일 관계의 특징이었지만 앞으로는 달라질지 모른다.


반일 감정이 고조되면서 충칭시에서는 반일항쟁 기념 건조물에 ‘고양이와 일본인은 출입금지’란 경고문이 등장했다. 과거 일본의 중국 대륙 침탈은 말로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참혹했지만 이번 영토분쟁을 통해 중국의 반일 정서는 여전히 섬뜩하다는 점이 재차 확인됐다.


상대가 중국과 특수관계인 일본이란 점에서 중국 외교가 힘의 외교로 완전히 돌아섰다고 단언하긴 어렵다. 미국이 일본·호주·인도·한국 등 아·태지역 국가들과 가치동맹에 열을 올리면서 중국을 자극한 측면도 있다. 중국계 미국인 에이미 추아 미국 예일대 교수는 ‘제국의 미래’에서 “관용과 포용력이 있는 나라가 강대국이 된다”고 말했다. 중국이 미국을 뛰어넘는 국제 사회의 리더가 되려면 곱씹어 볼 필요가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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