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대북정책, 그 이념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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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대북정책, 그 이념의 추억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 18.

새해 벽두부터 미국의 대북정책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 지난해 후반부터 한층 강화된 인권압박을 필두로 연말 소니영화사 해킹사건 이후 사이버테러의 주범으로 북한을 지목하면서 대북강경론의 고삐를 더욱 조였다. 최근 한·미 합동군사훈련 중단을 조건으로 한 북한의 핵실험 유예 제안에도 곧바로 찬물을 끼얹었다. 핵문제에다 인권과 사이버해킹까지 북·미 사이에는 겹겹이 장애물이 쌓여간다.

왜 이런 지경까지 온 것일까? 물론 정도 차이일 뿐 북·미관계가 좋은 적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과, 또 우리가 익히 아는 북한의 악행(?)에만 초점을 맞추면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설명이 필요 없는 만큼 해답도 없어진다. 미국 스스로도 북한이 자발적으로 핵을 폐기하고 주민들에 대한 폭정을 포기할 가능성이 없다고 공공연하게 말해왔다. 정말 심각한 것은 미국의 압박이 북한이 생존을 위한 핵무기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게 만듦으로써 비핵화는 비현실적인 목표가 되고, 한반도의 평화는 멀어지는 것이다.

오바마는 부시의 재난에 가까운 외교 실패를 효과적으로 파고듦으로써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그는 적대국들과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스마트 외교를 내세웠고, 따라서 북·미관계의 개선도 기대하게 만들었다. 더욱이 부시 정부 임기 말 2년의 대화모드를 발전적으로 계승하겠다고 선언했었다. 하지만 그의 진심은 거기까지였다. 이제 부시 행정부의 초기 강경론과 구별하기조차 어렵다.

재선에 성공한 후 역사적 유산 남기기 차원에서 대북정책의 변화를 시도할지도 모른다는 희망 섞인 기대도 무산되었다. 또 임기 마지막 2년에 대북정책을 전환했던 부시 행정부와 비교하는 희망적 사고도 여지없이 깨졌다. 오바마는 대북정책의 방향을 바꾼다 해도 어떤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고 결론 내린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 유산 남기기도 임기 내 가시적 결과가 예측되는 경우라야 시도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을 혐오하는 것은 이제 집권당이 누구냐에 상관없이 거의 디폴트로 굳어지는 듯하다. 공화당의 대북 혐오는 상대적으로 이념적 성향을 갖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정치적 수사는 단순하고 강경하다. 북한에 대한 선악의 근본주의적인 혐오감을 가지고 있기에 타협이 어렵다. 반면에 민주당 정부는 북한에 대해 상대적으로 기능적이고 실용적인 판단 성향을 가지고 있어 공화당보다 단순하지 않았다. 구체적 사안별로 접근하기에 공화당보다 더 강경해질 수도 있지만 타협의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오바마 정부에서는 그런 구별마저 희미해질 만큼 이념적 대북 혐오는 극에 달한 것 같다. 전례 없이 북한을 악마화하고 자존심 싸움에 매달리고 있다. 북한의 제안을 탐색하는 것조차 북한에 지는 것처럼 간주하고 묵살해버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뉴욕타임스의 비판은 바로 이 점을 가리키는 것이다. 물론 오바마 정부의 이념적 대북 행보가 내부적으로는 레임덕을 지연시키려는 계산된 카드의 측면도 엿보이지만 여러모로 부시 행정부의 이념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오바마 미 대통령 ·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출처 : 경향DB)


진심이든 변심이든 오바마 정부의 행보는 이제 박근혜 정부의 진심을 테스트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강경 일변도 정책에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통일대박론으로 대표되는 변화의 의지를 보이긴 했지만 그 진심은 계속 의심받아왔다. 이제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시점이 왔다. 또 북한 탓을 하는 방법으로 다시 빠져나갈 것인지, 강해지는 미국의 견제를 극복하고 오히려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주도적으로 대화에 나설 것인지 마지막 갈림길이다.


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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