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계 드러낸 ‘유러피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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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한계 드러낸 ‘유러피언 드림’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3. 27.

중동 분쟁이 유럽을 근본부터 뒤흔들고 있다. 지난 22일 이슬람국가(IS)가 ‘유럽연합의 수도’ 브뤼셀에서 국제공항과 지하철역을 공격하는 동시다발 자살 테러로 민간인 30명 이상이 죽었고 100명 이상이 다쳤다. 지난해 파리를 두 차례나 강타한 IS의 테러가 유럽에서 일상화하고 있다. 유럽의 언론은 이제 이슬람 테러가 유럽 어디서나 상시적으로 일어날 수 있으며 간단하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한다.

2010년 그리스에서 유로위기가 시작되었을 때 많은 전문가들은 단일화폐의 붕괴로 유럽통합이 와해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유럽은 유로위기 극복을 위해 새 제도를 만들고 금융통합의 드라이브를 걸었다. 그 이듬해 튀니지에서 아랍의 봄이 시작되자 유럽은 물론 세계가 지중해를 넘어 아프리카와 중동으로 민주주의가 퍼지길 꿈꾸었다. 하지만 아랍의 봄은 이집트처럼 독재로 회귀하거나 리비아, 시리아와 같이 내전으로 전개되었다. 희망이 위험으로 돌변하는 역사의 아이러니다.

시리아와 이라크의 내전을 틈타 성장한 극단주의 이슬람단체 IS는 두 방식으로 유럽을 위협하고 있다. 하나는 유럽 내부의 이슬람 소수 집단을 활용해 테러공격을 하는 직접적 방식이다. 프랑스나 벨기에 국적을 갖고 있더라도 당당한 시민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이슬람 소수 집단은 IS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 자살 테러를 성전(聖戰)으로 인식한다. 이슬람 소수에 대한 유럽 사회의 거부감이 강해질수록 더 많은 전사가 IS로 지원하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동 현장의 치열한 전쟁으로 다수의 난민을 발생시킴으로써 유럽에 압력을 가하는 간접적 방식이다. 지난해 유럽에 도착한 난민의 수는 100만명을 넘는다. 올해도 난민의 행렬은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난민 수용에 가장 적극적이던 독일의 메르켈 총리는 국내 여론의 반발로 정치적 위기에 빠졌다. 폴란드, 체코, 헝가리, 슬로바키아 등 동구 국가들은 난민이 테러를 가져올 것이라는 핑계로 난민 수용을 거부하고 있다.

파리 에펠탑에 브뤼셀 연쇄 테러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벨기에 국기 조명이 켜져 있다_연합뉴스


테러와 난민이라는 중동의 양대 충격에 유럽 통합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우선 유럽 정체성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민주주의 원칙에 틈새가 드러났다. 프랑스는 기본권 축소의 비상사태를 선포한 지 벌써 5개월째다. 지난 19일 유럽연합과 터키의 난민에 관한 합의는 인권의 측면에서 많은 허점을 안고 있다고 유엔에서 지적할 정도다. 터키의 에르도안 정권은 최근 들어 권위주의적 경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왔다. 그런 국가에 돈을 주며 난민을 맡아달라고 부탁하는 유럽의 모습은 인권의 본고장답지 못하다.

민주주의 정체성뿐 아니라 유럽 통합의 가장 커다란 성과라고 손꼽혀 온 자유통행의 공간도 깨졌다. 난민의 통로로 활용되었던 그리스, 발칸, 헝가리, 오스트리아, 독일, 덴마크 등에 철조망이 등장하고 국경 검색이 부활하였다. 벨기에 테러 직후 프랑스와 벨기에의 국경은 일시 폐쇄되었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이동하면서 여행하고 사업하고 일하던 유럽이라는 공간은 이제 국경이 첩첩 쌓였던 과거로 되돌아가는 중이다. 난민과 테러리스트만 거르는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제러미 리프킨이 찬양해 마지않던 ‘유러피언 드림’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유럽은 강한 복지국가를 내세우며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모델로 미국과의 차별화를 시도해 왔지만 이민 출신 이슬람 소수를 통합하는 데 실패했다. 보편적 복지·사회·교육 정책도 사회문화적 편견이나 장벽을 허무는 데 무기력했다는 말이다. 테러와 난민 문제는 내부의 사회통합과 대외적으로 중동평화라는 지난하고 힘겨운 방법을 통해 긴 시간에 걸쳐 해결될 수밖에 없다. 유럽이 극우가 부르는 증오의 노래에 도취하여 성급하게 전쟁과 차별, 폐쇄의 길로 가지 않기를 기대한다.


조홍식 | 숭실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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