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의 벽’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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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교실의 벽’ 사이에서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6. 24.
체벌금지가 시행된 후, 우리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돌발적인 사고들이 경쟁적으로 보도되면서, 체벌 없인 안된다는 성급한 여론조성이 성공을 거두는 모습들을 목격한다. 마치 독재시절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는 듯한 그 광경을 보면서, 프랑스영화 <클래스>(원제 entre les murs, 벽 사이에서)를 떠올렸다.

영화 클래스 중 한 장면 | 경향신문 DB
 
 
2008년 칸에서 황금종려상을 탔고, 지난해 국내에 개봉되기도 했던, 로랑 캉테 감독의 이 영화는 파리의 한 중학교를 배경으로 교육현장의 고단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다큐형식의 영화다. 

이민자들이 유독 많이 사는 동네. 교사의 말에 순종해야 하는 이유를 전혀 알지 못하며, 다듬어지지 않은 자아만 무성한 아이들과 프랑스어 선생 마랭은 새학기를 시작한다. 이성적이면서도, 한편으론 감정적인 교사와 쉽지 않은 가정환경을 안고 있는 아이들과의 수업은 하루 하루가 작은 전쟁이다.

교사가 한 학생에게 책의 한쪽을 읽으라고 한다. 아이는 “싫은데요” 답한다. “왜 싫지?” 물으니, “읽을 마음이 없어서요”라고 답하는 식이다. 소위 뚜껑이 열릴 것 같은 순간이 밀물처럼 다가온다. 아이들은 교사에게 “당신 호모라는 소문이 있다”는 이야기도 서슴없이 건네고, 교사가 감정적으로 건넨 한두 마디 말을 꼬투리 잡아, 그를 징계위기에 몰아넣기도 한다. 

그러나 그 어떤 순간에도 교사는 아이들과 토론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호모라는 발언이 아이들에게서 나왔을 땐, 동성애에 대한 토론을 이끌어내 아이들의 머릿속에 담긴 고정관념들을 환기시킨다. 교사가 예문을 들 때, 아랍식 이름은 예로 들지 않고, 프랑스식 이름만 든다고 아이들이 지적할 때에는 그 지적을 경청하며 자신의 불균형을 인정하기도 한다. 교단도 교탁도 없는 이들의 교실은 끊임없이 난파 직전의 배처럼 기우뚱거리지만, 교사와 아이들은 서로 이 힘겨운 수업을 일궈나가는 동등한 주체라는 사실만은 명백하다.

아이들은 선생을 향해 끊임없이 공격의 화살을 퍼붓는다. 그것은 그들에게 불리하게만 돌아가는 이 사회와 제도 전체에 대한 불만의 표현이며 그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교사는 그 어떤 순간에도, 모든 갈등의 알맹이들을 낚아채, 깊숙한 토론으로 아이들을 이끌고 들어가길 멈추지 않는다. 토론을 통해, 아이들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감정의 폭발은 적절하지 않은 어휘를 통해 드러날지언정, 물리적 폭력은 등장하지 않는다.

절대적 권위가 한 순간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장악하는 독재적 질서와는 동떨어진, 모든 갈등을 이성의 힘으로 해결하는 훈련이 이루어지는, 수평적 질서가 지배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수직적 권위가 중심 질서로 작동하는 한, 강제로 억제당한 폭력은 어느 순간 폭발하고 만다. 문제는 체벌이라는 물리적 수단이 작동하고 안하고가 아니라, 어떤 종류의 질서가 교사와 학생들 사이에서 작동하는지에 있다. 

현직 교사가 자신의 체험을 적은 소설을 원작으로 했고, 그 소설을 쓴 교사와 파리 20구의 중학생들, 학부모들이 직접 출연하는 이 영화는 완벽하게 프랑스 교육현장의 아픈 실체를 드러낸다. 불법체류자 부모를 둔 중국학생, 불어를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부모를 둔 아프리카권 이민자 자녀들, 조용하게 교실 한구석을 지키고 있다가, 학교에서 배운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처절하게 말하는 아이, 이 아이들을 둘러싼 음울한 환경은 교실 안에서 응축되고,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그 안에서 마주치는 모든 모순들에 맞서 저마다 지혜로운 답을 찾아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학교가 해야 할 첫번째 임무이다. 

유럽 전역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이 영화는 어떤 해답도 내놓지 않는다. 아이들 스스로 답을 찾도록 질문을 던지는 영화 속의 교사처럼, 학교가 안고 있는 상흔들을 샅샅이 드러내고 감정과 이성이 엮어내는 변주들을 들려주면서, 우리를 난망한 질문들 앞에 세울 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답을 말해주는 사람보다 질문을 던져주는 사람이 아니던가. 우리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게 해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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