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규장각 반환 숨은 공신 자크 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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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외규장각 반환 숨은 공신 자크 랑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7. 22.
지난 10여년간, 프랑스와 관련한 거의 모든 기사에는 ‘외규장각 도서나 빨리 내놓으라’는 댓글이 언제나 달려있었다. 프랑스가 반환을 약속하고도 18년간 지키지 않았던 탓에, 외규장각 도서는 온 국민의 가장 큰 관심을 모으는 고문서가 되었고, 이로 인해 프랑스에 대한 한국인들의 감정 한 구석에는 뻔뻔한 제국주의자에 대한 인상이 새겨지게 됐다. 

한국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프랑스인이라면 이 반환되지 않는 도서가 프랑스를 향한 반감을 얼마나 줄기차게 생산해 내는지, 반환 없이는 프랑스에 박힌 미운 털이 뽑힐 수 없음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세월 해결을 보지 못했던 것은, 약탈한 문화재 반환이 제국주의의 약탈로 구축된 그들의 문화재 창고가 공중분해될 수도 있는, 판도라의 상자를 건드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그 엄청난 사고를 촉발하는 책임을 지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런 예외적 결정은 정치적 결단을 통해서만 가능한 법. 결국 대여라는 석연치 않은 형식으로나마 반환이 이뤄지게 된 배경에는 대통령의 귓전에 강력히 그 정치적 필요성을 역설한 사람이 있었으니 사회당의 자크 랑이 바로 그다. 

지난 6월 드디어 외규장각 도서가 돌아왔을 때, 자크 랑은 이 책들과 함께 한국에 왔다. 프랑스 현 정부의 외교부 혹은 문화부 인사가 아닌 사회당 국회의원일 뿐인 그가 도서들과 동행한 것은 그가 자청하여 이 책들의 예외적 반환을 성사시킨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악마와 동맹을 맺었기에, 이런 난감한 고생길에 나선 거냐”고 20일 르몽드 기자가 자크 랑과의 인터뷰에서 노골적으로 물었다.
“한국은 지난 세기 동안 일본인들에 의해 그들의 정체성을 짓밟히고 잔혹한 전쟁과 독재를 겪었다. 그 혹독한 시절을 보내고 30년 만에 그들의 강력한 의지로 극빈국에서 선진국으로 도약했다. 이제 그들에게는 그들의 정체성과 그들의 문화를 되찾아야 할 일이 남아있다. 이 책들은 한국인들의 기억과 역사, 영혼에 속하는 것이다. 이 책들이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라 한국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런 확신에 그는 18년 전 미테랑을 설득했고, 다시 2010년 사르코지를 설득할 수 있었다. 

미테랑 집권기간 동안 그는 10년간 문화부 수장을 지냈다. 문화를 자신의 비밀의 정원으로 삼았던 미테랑에게 그는 오랫동안 문화를 향한 통로였고, 미테랑은 자크 랑과의 밀착된 관계 속에 문화정치의 시대를 열었다. 예술과 문화에 대한 사랑을 민주주의라는 틀을 통해 정치신념으로 확대시킨 그는 프랑스인들에게 전 문화부 장관이 아닌 영원한 문화부 수장으로 각인되어 있다. 

그는 장벽없는 세계무역의 자유화가 논의되는 GATT협상에서 ‘문화적 예외’를 주장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이 생각은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의 동의를 얻은 ‘문화다양성 협정’으로 거듭났고, 미국의 문화제국주의에 맞서는 한국의 스크린쿼터 운동에도 강력한 지지를 보내주었다.
제국주의의 첨병이던 프랑스가 오늘의 새로운 문화제국주의의 맹주 미국에 맞서 싸우기 위해 문화다양성의 논리를 내세우는 것. 역사의 아이러니다. 미국에 다 줄 수 없으니 이제서야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우리가 복원해야 할 정체성과 문화”를 말하는 순간, 영악한 정치인 자크 랑에 대한 의심의 안개가 한꺼풀 걷힌다.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수모를 감수하면서까지 자신의 신념을 대통령에게 설득할 수 있었다면, 거기엔 계산을 넘어서는 보편적인 진실의 힘이 있었을 터. 문화는 한 사회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최후의 방편이라는 진실을 그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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