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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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오관철의 특파원 칼럼

“홍콩, 힘내라”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10. 15.

이달 초 4일까지 5일 동안 홍콩 민주화 시위 취재차 홍콩을 찾았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은 시민들의 공감 능력이었다. ‘쇼핑 천국’, ‘야경의 도시’, ‘글로벌 금융도시’로 불리는 홍콩 시민들이 개인주의적 성향을 띨 것이란 생각은 적어도 시위 현장에서는 편견이었다.

대학생들이 중국 공산당의 무늬만 직선제인 행정장관 선거제도 철폐를 요구하며 동맹 휴업에 들어갔을 때 별로 움직이지 않던 시민들을 거리로 이끈 것은 최루탄의 고통이었다. 토니 웡(25)이 그런 경우였다. 그는 당초 시위대와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시위대가 최루탄의 고통을 맛본 뒤 천막 아래서 재활용을 돕는 자원봉사 일을 하고 있었다. 그처럼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며 시위에 나선 이들이 많았다. 아무런 저항수단이 없는 얌전하고 착한 시위대에게 최루탄을 발사한 것에 대한 분노에 공감하는 사람들이었다.

시위 현장에서 숙제하는 중·고생들은 왜 거리로 나왔을까. 취업이 안돼 막막하고 폭등한 집값으로 내집 마련에 힘겨워하는 대학생이나 직장인들의 고민 속에서 자신들의 미래를 봤기 때문이다.

30도를 훌쩍 넘는 무더위 속에서도 시위에 나선 홍콩 시민들의 얼굴은 편안해 보였다. 외국 기자들의 질문에 열에 아홉은 성심성의껏 답변해 줬다. 생수와 물수건을 건넨 이도 있었고 취재 수첩에 자신의 이름을 친절히 적어줬다. 이 역시 외국 기자의 입장을 헤아렸기 때문일 것이다.

‘우산혁명’으로 불리는 이번 민주화 시위가 가장 예의 바른 시위로 평가받는 것도 시민들 사이에 이심전심으로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시위 매뉴얼은 ‘시민 불복종 행위란 부당함에 대항하기 위해 법과 규칙을 준수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이지만 문화 시민적 공손함을 지키는 것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홍콩 시민들의 분노를 촉발한 경찰의 최루탄 발사는 2005년 홍콩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 당시 한국 농민들의 원정 시위 이후 처음이었다. 당시 홍콩 시민들의 한국 시위대에 대한 생각 역시 남달랐다. 많은 홍콩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한국 시위대의 주장을 경청했다. 단순히 눈살을 찌푸리거나 신기한 구경거리로 여기진 않았다. 왜 한국 농민들이 비행기를 타고 홍콩까지 와서 시위를 벌이는 것인지 알고 싶어 했다. 홍콩 경찰의 강경 진압에 맞서 우리 농민들이 격렬한 시위를 벌였고 한국의 국제적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는 주장도 많았으나 홍콩 유력지 명보의 당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시민 60%는 그래도 한국 농민들을 지지한다는 것이었다.

민주화 시위대가 점거하고 있는 홍콩 정부청사 주변 거리에 지난 5일 밤 학생들이 설치한 ‘노란 우산을 든 조각상’이 우뚝 서 있다. _ 연합뉴스


이번 민주화 시위의 성격에 많은 진단들이 나온다. 직접적 이유는 중국이 2017년에 실시할 행정장관 직선제의 후보를 친중국 후보로만 제한키로 한 데 따른 반발이다. 홍콩의 민도(民度) 수준에 비춰 행정장관 후보추천위원회의 과반수 지지를 얻은 2~3명의 친중국 인사를 대상으로 직선 투표를 하라는 것은 모독에 가깝다. 홍콩인들의 저항의 내면에는 갈수록 중국화되는 홍콩의 모습에 대한 거부도 깔려 있다.

홍콩의 대규모 시위는 짧게는 몇 달 전, 길게는 수년 전부터 예고된 것이었다. 문제는 시민들의 주장에 공감하지 않았던 정부 측에 있었다. 중국 눈치를 보느라 정부는 애써 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했고 중국 공산당은 당의 권위를 훼손시킬 수 없다며 귀를 막았다.

홍콩대 재학생 황샤오린(23)은 취재 중이던 기자에게 “한국에서 왔느냐”며 먼저 말을 걸어 왔다. 한국 드라마를 통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는 그는 한국의 민주화 투쟁 역사를 알고 있으며 홍콩의 민주화 열망을 많이 알려 달라고 부탁했다. 민주화 시위에 나선 홍콩 시민들은 그처럼 국제 사회의 공감과 연대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들은 “홍콩, 자유(加油·힘내라)”를 듣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들이 싸우기에 중국은 너무 힘이 세고 국제 사회는 중국의 경제력에 밀려 홍콩을 외면하고 있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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