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반부패 운동의 진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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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오관철의 특파원 칼럼

시진핑 반부패 운동의 진정성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8. 6.

후덕재물(厚德載物). 덕을 쌓아 만물을 포용한다는 뜻으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정치철학이다. 2012년 11월 18차 공산당 대회를 통해 총서기에 등극하면서 그의 시대가 열리자 많은 분석가들은 후덕재물로 대표되는 인화단결을 그의 리더십 특징으로 꼽았다. 시 주석도 과거 한무제, 당태종 같은 영웅형보다 유방이나 유비 같은 외유내강형 인물을 좋아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시 주석이 지도자로 낙점되는 과정에 큰 역할을 했던 쩡칭훙(曾慶紅) 전 부주석이 내세운 논리도 어느 파벌도 거부할 수 없는 인물이란 점이었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이 반부패 운동의 기치를 높이 내걸었을 때 계파 간 융화를 중시하는 그가 얼마나 큰 호랑이를 잡을지 미지수란 냉소적 시각도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현재 시 주석의 기세는 기존의 평가를 무색케 한다. 권력은 갈수록 그에게 집중되고 계파 간 타협 정치는 퇴색하고 있다. 중국은 현재 1949년 공산당 정권 수립 후 가장 강력한 반부패 운동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있다. 지금까지 약 6만3000명의 당 관료들이 처벌을 받았으며 압박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관리만 70명에 달한다.

지난주 저우융캉(周永康) 전 상무위원에 대한 조사 사실이 공식화된 후 많은 중국인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다. 중국 정계에서 전·현직 상무위원은 ‘언터처블’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 주석의 부패 척결에 대한 의지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준다. 지금 돌아보면 2인자 시절 철저하게 고개를 숙이면서 주변의 견제를 이겨내고 자신의 때가 오기만을 기다려 왔던 것 같다. 사실 부패 척결에 대한 시 주석의 의지는 지방 성정부 지도자 시절부터 오랜 기간 축적돼 왔다.

시 주석은 저장(浙江)성 당서기였던 2007년 1월 저장성 기율위원회 회의 석상에서 “온수효과(溫水效果)를 멀리하라”고 말했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속에 갑자기 넣으면 뛰쳐나온다. 반면 미지근한 물속에 넣고 서서히 열을 올리면 자신이 죽는 줄도 모르는 채 죽어간다. 공직자들에게는 뇌물이나 각종 향응이 온수에 해당한다. 공직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온수 속에서 서서히 부패해가고 결국은 정치 생명을 잃게 된다는 것이 시 주석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 주석은 부주석 시절 당무를 관장하는 제1서기였지만 부패 척결을 소리 높여 외치진 않았다. 역시 철저하게 몸을 낮췄다. 다른 한편에서 보면 반부패 운동이 말의 성찬에 그치지 않도록 치밀한 계획을 세웠을 것으로 보인다.

시진핑 중국 주석이 ‘7·7 사변’ 77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_ AP연합


이처럼 부패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쳤지만 그의 반부패 운동에 쏠리는 의혹과 한계, 냉소적 시각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특히 권력 확장에 대한 의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저우융캉은 한때 시 주석의 라이벌이던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重慶)시 당서기(정치국원)의 후원자였다. 저우융캉은 보시라이를 상무위원으로 앉히면서 자신이 맡았던 정법위원회 서기를 물려주려 했다. 중국의 사법과 공안을 총괄하도록 하면서 자신의 퇴임 후 안전을 보장받으려 한 것이다. 이 같은 두 사람이 부패의 대표 인물로 찍혀 실각했다는 점은 반부패 운동이 정적 제거와 무관치 않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중국의 시민운동가들이 요구하는 공직자 재산공개 요구도 수용되지 않고 있다. 제도적 뒷받침이 없는 불끄기식 부패 척결은 한계가 분명할 수밖에 없다. 더구나 재산공개제도는 부패 척결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언론은 자유로운 취재와 보도가 불가능하다. 시 주석 일가가 부패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은 최대의 아킬레스건이다. 시 주석은 문화대혁명 시절 고초를 당한 가족들에게 상당한 미안함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시 주석 일가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결정을 내린다면 반부패 운동의 진정성에 쏠리는 의구심은 일거에 해소될 수 있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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