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짝 금리 인하로 중국이 잃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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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오관철의 특파원 칼럼

깜짝 금리 인하로 중국이 잃은 것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11. 26.

지난 21일 저녁 전격적으로 이뤄진 중국 인민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는 두가지 점에서 아쉬움을 준다. 하나는 인민은행의 신뢰성을 해쳤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개혁이 얼마든지 성장의 뒷전으로 밀릴 수 있음을 보여줬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을 두고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하는 꼴’이란 말이 회자됐다. 시장에 보내는 신호와 정반대의 결정을 내렸다는 뜻이다. 인민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를 보면서 이 표현이 떠올랐다. 중국 정부와 인민은행 관계자들은 중국의 성장둔화에 대한 외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줄곧 성장률은 합리적 범위 내에 있다고 일축해 왔다. 경제를 맡고 있는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지난달 11일 독일 방문 중 올해 중국 경제가 7.5% 성장률을 달성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마쥔(馬駿) 인민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도 리 총리 발언 전날 워싱턴에서 “가까운 장래에 재정이나 통화 정책을 통한 대대적인 경기 부양책을 펼 필요성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 중문판은 지난달 22일 중국 정부 관계자들이 “기준금리를 인하하지 않는다는 인민은행의 입장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인민은행은 금리 인하 후 발표한 성명에서도 “통화정책에 변화가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견해를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중국이 경기부양을 위해 공격적인 통화 완화 정책으로 옮겨가는 신호로 해석하고 있으며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미니 부양책을 고집하던 리 총리가 경기둔화에 굴복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중국은 미국이나 우리나라와 달리 중앙은행이 정부의 지휘를 받기 때문에 인민은행의 독자적 결정은 불가능하다.

어느 나라든 중앙은행의 결정이 시장 예상대로만 이뤄지진 않겠지만 시장의 합리적 예측범위를 벗어나는 것도 문제다. 영국 투자은행 바클레이즈가 지난달 10일부터 31일까지 전 세계 금융시장 관계자 54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인민은행의 신뢰도는 10개 주요 신흥국 중 호주, 인도, 남아프리카공화국 등에 뒤지며 8위에 그쳤다. 중국 특유의 폐쇄성이 문제인 상황에서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하는 행태가 가세한다면 인민은행 통화정책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시장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다.

대출 금리가 낮아지면 가격하락과 공급과잉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국 부동산 시장에는 호재가 된다. 그렇다면 중국 정부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부동산 거품이 끼길 바라는 것인지 궁금하다. 채무 증가에 따른 금융불안이 더 커질 수도 있다. 금리 인하가 위안화 절상 압력을 누르기 위한 목적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글로벌 통화 전쟁을 격화시킬 수 있고 이는 책임 있는 대국의 자세도 아니다.

물론 중국 당국이 이 같은 문제점을 몰랐을 리 없을 것이고 금리 인하가 단기적으로 경제에 가져올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손쉬운 경기부양을 통해 개혁 의지가 퇴색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4일 서울 명동의 한 환전소 앞으로 시민이 지나고 있다. 중국의 전격적인 기준금리 인하에 한국을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출처 : 경향DB)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장이 지난달 열린 18기 공산당 중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에서 교체될 것이란 설이 돈 적이 있다. 중국 지도부가 경기부양에 부정적인 그를 퇴진시켜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에 나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이 같은 설이 돌았던 이유였다. 비록 그의 교체는 현실화하지 않았으나 이 같은 말이 흘러나오는 것 자체가 중국 정부 내부에서 경기부양을 위한 정책변화 가능성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방증으로 받아들여졌다. 이번 금리 인하가 성장론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조치일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 정부와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들 사이에서 “최고 지도자들이 견해를 바꿨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심상치 않다. 성장률을 희생하고 고통을 겪더라도 투자와 수출에 경도된 중국의 발전 방식을 바꾸겠다고 공언해 온 중국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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