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서 출산하고 아이 잃은 노숙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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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거리서 출산하고 아이 잃은 노숙 여인

by 경향글로벌칼럼 2011. 11. 9.
지난주, 파리14구의 평화롭고 부유한 주택가에서 노숙생활을 하는 한 30대 여인이 거리에서 아이를 출산했다. 아이는 태어난 지 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 산모는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러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소방차도 응급구조대도 오지 않았다. 결국 아기는 어떤 사회적 손길도 받지 못한 채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20061220 | 프랑스 파리 시민들이 생 마르탱 운하를 따라 세워진 텐트에서 '노숙자 체험'을 하고 있다. 이번 주 내내 계속될 이번 행사는 한 형제가 내년프랑스 대통령 선거에서 노숙자 문제가 무시되지 않길 바라는 의미에서 시작한 것으로 노숙자의 어려움을 더 잘 이해하려는 많은 시민들이 안락한 생활을 잠시 버리고 동참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 경향신문DB

 
처음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온몸에 소름이 돋았던 것은 앞으로 이런 일이 바로 내 앞에서 무수히 생겨날 거라 예감했기 때문이다. 10년 전에 비해 파리의 노숙인은 헤아릴 수 없이 늘어났다. 집에서 지하철까지 가는 5분도 안되는 짧은 거리에서 만나는 노숙인의 수는 10~15명. 그 가운데 아이들이 다수이다. 며칠 전 새벽기차를 타러 가는 친구를 배웅하면서 은행 담벼락 밑에 담요를 뒤집어쓴 누군가의 움직임을 포착한 적이 있다. 노숙하는 성인이려니 했건만, 자세히 보니 두 살쯤 된 아기가 앉아 놀고 있었다. 

날마다 그들을 보면서 밤이면 그래도 어딘가 지붕 있는 데 가겠거니 믿었건만, 그들은 거기서 먹고 자며 살고 있었다. 길바닥에서 엄마의 젖을 먹고 있는 갓난아이, 맨발로 거리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을 이 번드르르한 파리 중심가에서 날마다 목격하는 일은 타락한 금융자본주의가 한 나라를 송두리째 쓰러뜨리는 광경과 짝을 이뤄 자본으로 인해 분열된 세상의 거친 풍경을 만들어낸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2년 내에 거리로 내몰려 거기서 자다가 죽음을 맞아야 하는 노숙인은 완전히 사라질 것입니다. 주거의 권리는 하나의 인류적인 의무임을 나는 잘 알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지붕이 있는 집에서 살아야 할 권리가 있습니다.” 구구절절 주옥같은 이 말을 당당히 내뱉은 사람은 대선 후보 시절의 사르코지다. 사르코지 집권 후 노숙인은 사라지기는커녕 증가했다. 사르코지가 내무부 장관이던 2002~2007년 5년 동안 사망한 노숙인은 660명이었다. 2009년에는 358명, 2010년에는 414명으로 늘어났다. 

2011년 거리에서 죽어갈 사람의 수가 엄청나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는 것은 지난해 추방됐던 집시들이 올봄부터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들은 대부분 가족단위로 노숙을 한다. 한창 먹고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노숙하는 부모 곁에서 종일 무력하게 앉아 있는 아이들을 바라볼 수 없어 구청과 구호재단에 연락을 해보아도 꿈쩍하지 않는다. 노숙인들이 구걸로만 살아가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통계청에 의하면 노숙인의 30%는 비정규직이나마 일자리가 있고, 40%는 고용안정센터에 등록돼 구직활동을 한다.

문제는 파리에서 아파트를 빌리는 것이 서민들에게 불가능한 일이 되어가는 현실이다. 집주인들은 월세의 3배 이상 되는 월급명세서를 임대조건으로 내세운다. 이 때문에 웃돈을 주고 급여명세서를 위조하는 세입자들까지 생겨난다. 아차 하는 순간 150만명에 이르는 이 나라의 극빈층은 노숙인으로 전락할 수 있다. 집권 후 사르코지가 노숙인을 줄이기 위해 했던 유일한 시도는 집시들을 통째로 끌어내 추방해버린 것뿐이다. 왕권을 무너뜨리고 인권이 존재함을 천명한 바로 그 나라에서 인권을 가장 현란하게 부서뜨리는 광경이 지금 여기서 벌어진다. 

유라시아 대륙의 저쪽 끝에선 당선된 지 며칠 만에 공약을 죄다 실천해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충격을 준 박모 시장이 있다는 얘기를 이 나라 사람들에게 얼른 알려야겠다. 공약을 정반대로 실천한 정치인들이 다신 얼굴을 들 수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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