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와 근대국가라는 쌍생아
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손제민의 특파원 칼럼

공포와 근대국가라는 쌍생아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11. 24.
1588년 어느 날 영국 서남부의 맘스버리라는 내륙 시골마을에서 한 여성이 스페인 무적함대가 쳐들어온다는 소식에 놀라 아기를 조산했다. 아기는 훗날 “나와 공포(fear)는 쌍둥이로 태어났다”고 한 토머스 홉스다. 홉스는 ‘길 가다가 누가 뒤에서 돌로 내려치면 어떡하나’ 같은 상상에서 시작해 평생 공포를 생각하며 살았다. 그에게 가장 큰 공포를 안겨준 것은 영국 왕당파와 공화파의 내전이었다. 안정적 정치체제가 필요했고, 결과물이 <리바이어던>이다. 시민들의 계약에 의한 근대 주권국가 개념은 결국 공포와 함께 태어난 셈이다.

다시 공포가 배회하고 있다. 파리 테러 이후 벨기에에서 테러 모의가 적발돼 거리가 온통 얼어붙고, 추수감사절과 블랙프라이데이 연휴를 앞둔 미국 대도시 행인들의 표정에서도 두려움을 읽을 수 있다. 공포를 만든 세력은 스스로 국가임을 선포한 이슬람국가(IS)이다. IS는 중세 이슬람 율법에 따라 통치하는 칼리프왕조를 표방한다. 근대국가가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해 은밀하게 사용하는 폭력을 이 준(準)국가는 보란 듯이 잔인하게 쓴다. 그게 국가 건설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IS 입장에서 국가 건설을 위해서는 이슬람 세계가 친서구 대(對) 반서구로 분열되는 것이 좋다. 지난 2월 IS는 자신들의 선전잡지인 ‘다비크’에 올린 글에서 급진적 이슬람에 동조하지 않지만 자신들이 사는 서구국가에도 충분히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는 무슬림들의 ‘회색지대’를 없애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유럽과 미국 사회의 분위기는 IS의 이런 전략에 부응하고 있다. 난민들 속에 테러리스트들이 섞여들어온다고 공포를 조장하며 난민 수용을 중단하고, 이슬람 사원을 감시하며 무슬림 등록명부를 만들어 관리하자는 목소리가 인기를 얻는 것은 IS의 전략이 의도한 바다. 미국에 사는 무슬림들은 그들대로 이러한 반이슬람 정서에 공포를 느낀다. 대선을 앞둔 미국과 프랑스는 비합리적인 공포가 힘을 발휘하기 좋은 여건이다.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 현황_경향DB


그런데 파리 테러 공격을 한 사람들은 누구인가. 이들 대부분은 프랑스, 벨기에 국적으로 유럽에서 성장한 20대 또는 30대 청년들이었다. IS 표현에 따르자면 ‘회색지대’ 무슬림 청년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2005년 파리 교외의 방화 사태 때 무슬림 청년들의 프랑스 주류사회에 대한 분노와 좌절을 확인한 바 있다. 그 후 프랑스 사회는 우파가 오랫동안 집권하고 금융위기를 겪으며 그런 문제들을 풀기는커녕 사태가 더 악화됐다. 언젠가 미국, 프랑스 등의 군대가 IS 지도부를 궤멸시키는 날이 온다고 가정하자. 그렇다 하더라도 이 젊은이들의 좌절과 분노는 사라지지 않고 또 다른 극단주의와 손잡을 가능성이 높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자국 내에서 테러 공격이 일어나지 않는 한 IS 격퇴를 위해 미 지상군을 대규모로 투입하지 않으려 한다. 시리아·이라크에서 군사적 전략뿐만 아니라 시리아 난민 수용까지 국내 보수층의 거센 비판을 받고 있지만 개의치 않고 자기 길을 가고 있다. 오바마가 아니라 존 매케인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미국이 지금보다 안전해졌을지는 심히 의문이다. 오히려 지금보다 더 고삐 풀린 공포 속에 살아야 했을지 모른다.

공포의 정치는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다. 군 간부들을 계속 숙청하는 김정은 정권뿐만이 아니다. 박근혜 정권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인 원동력은 북한이 남한을 적화할지 모른다는 일부 사람들의 두려움에 있었다. 그러나 동북아에서 체제 생존을 제일 걱정해야 하는 나라를 꼽으라면 바로 북한 아닌가. 타계한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79년 한 외신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군부독재를 끝내고 더 민주적인 정치체제를 이룸으로써만 북한의 위험을 극복할 수 있다.” 독재정권의 공포 조장이 근거 없었음은 결국 역사가 확인했다. 하지만 공포는 죽지 않고 언제든 되살아난다. 근대국가의 태생이 그렇기 때문이다.


워싱턴 손제민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