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갈등 키우는 일 군사대국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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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한·미 갈등 키우는 일 군사대국화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7. 11.

유신모 워싱턴 특파원 simon@kyunghyang.com


 

미국 워싱턴의 ‘한국 관찰자들(Korea watchers)’은 올해 말 대선 이후 펼쳐질 차기 행정부의 한·미관계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어떤 후보가 유력한지, 그 후보의 한·미관계 철학은 무엇인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특히 유력주자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관심이 많다. 최근 워싱턴의 한 민간연구소 주최 세미나에서 만난 미국의 전직 관리는 박 전 위원장의 성향을 알기 위해 과거 발언 등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면서 “유력 대권주자이면서 이처럼 한·미관계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이 선명한 자기 견해를 제시하기보다 현안에 침묵함으로써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미국인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막연하나마 그가 대통령이 되면 지금의 한·미관계의 큰 틀이 유지될 것으로 기대한다.


 많은 사람들은 ‘더 없이 좋았던’ 지난 4년간 한·미관계가 지속되길 원한다. 하지만 박 전 위원장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이 한 번 더 대통령을 한다 해도 그렇기는 쉽지 않다. 차기 행정부는 그동안 미뤄왔던 껄끄러운 현안과 맞닥뜨려야 하고 외교보다 국내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어려운 사안을 피해왔다. 숙제를 안 하고 파티에 먼저 갔다가 밤늦게 돌아온 부담은 고스란히 차기 정부로 넘어간다. 


(경향신문DB)


한·미관계를 어렵게 만들 가장 큰 폭발력 있는 이슈는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이다. 일본은 지난해 무기수출 3원칙을 완화한 데 이어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설치법에 ‘평화목적’ 조항을 삭제해 우주개발을 군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길을 텄다. 또 지난달에는 원자력기본법을 개정하면서 ‘국가안보에 기여한다’는 조항을 삽입함으로써 핵무장의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여기에 최근 총리실 산하 정부위원회가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해 이제는 전수방위 원칙까지 무너뜨릴 기세다.


일본의 이 같은 움직임에 미국은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사실 미국은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중국을 봉쇄하는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서 일본의 군사력 확대는 핵심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22개국이 참가하고 있는 다국적 해상 연합훈련 ‘림팩(RIMPAC·환태평양훈련)’에서 정식 군대도 아닌 일본 해상자위대의 소장을 부사령관으로 임명해 지휘권을 맡기기도 했다. 


미국은 최근 무산된 한·일 군사협정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시하고 있다. 전략적으로 모두에게 필요한 사안임에도 한국 내에서 과거사에 발목을 잡혔다는 반응이 많다. 지난 7일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아시아에서 필수적인 한·일 간의 군사협력에 과거사가 장애물이 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어떤 인사는 “대선을 앞두고 있는 한국에서 정치인들이 대놓고 이 문제에 찬성할 수 있었겠느냐”면서 정치인들의 정략적 판단으로 일시 연기됐을 뿐 결국 한국도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미국 당국자들은 그동안 한·일 간의 역사적 배경과 국민정서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미국의 지원하에 일본이 군사력을 확대하는 것에 침묵해왔다. 하지만 조만간 한·미·일의 이해관계가 막다른 골목에서 맞부딪치고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때가 되면 한국이 지나간 과거에 연연해 좀 더 큰 국면을 바라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는지, 아니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에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주고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군대를 부활·확대시켜 아시아 전략의 기초로 삼으려 한 미국의 결정이 어리석었는지 판가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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