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누가 니스만을 죽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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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국제칼럼]누가 니스만을 죽였는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2. 8.

지난달 중순부터 아르헨티나에서는 알베르토 니스만이라는 한 검사의 대담한 결정과 죽음이 쉽사리 마무리되지 않을 정치적 추문으로 확산되고 있다. 니스만이 왜, 어떻게 살해되었는지 아직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죽음이 아르헨티나의 정치적 음모와 암투, 사회적 분열을 엿볼 수 있는 창을 열어젖혔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1월18일 니스만은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자택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한 채 발견되었고 사체와 함께 옆에 놓인 권총을 처음 확인한 그의 어머니와 수사 당국에 따르면 밖에서 누군가 침입한 흔적은 없었다. 10년 전부터 니스만 검사는 1994년 7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유대인 문화센터에서 발생해 85명을 숨지게 만든 폭탄 테러 사건을 수사해왔다. 유대인인 니스만은 이란의 지시에 따라 레바논에서 위세를 떨치는 이슬람 시아파 무장 정치 단체 헤즈볼라가 테러 사건을 일으켰다고 발표하고 2006년 이란 정부를 기소했다.

그 뒤 오랜 수사 끝에 니스만은 지난 1월14일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대통령과 엑토르 티메르만 외교부 장관을 형사 고발했다. 니스만은 대통령과 외교부 장관이 아르헨티나의 곡물, 쇠고기와 이란의 석유를 교환하는 수익성 좋은 무역거래를 확보하고자 이란 관리들의 테러 연루 의혹을 덮으려는 비밀협상에 나섰다고 주장했다. 니스만은 사망 당일 의회 청문회에서 수사보고서에 담긴 대통령과 고위 관리 관련 의혹과 혐의 내용을 공표할 예정이었다. 그가 사망한 뒤 수사담당 검사가 공개한 바에 따르면, 니스만은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초안을 작성하기까지 했다.

갑작스러운 니스만의 사망은 불투명한 정치적 의혹과 추문이 꾸준히 발생하는 사회의 혼란과 비극을 예증한다. 최근 지지율이 30%에 미치지 못하는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애당초 니스만의 자살설을 언급했다가 며칠 뒤 말을 바꿔 그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변호사 출신의 여성 대통령은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수사 내용이 터무니없다고 일축하고 자신을 부당한 대우를 받은 피해자로 보이게끔 애쓰면서도 음모론에 기대고 정적을 찾아내 공세를 취하는 평소의 성향을 재확인시켜주었다. 대통령은 니스만이 정보부의 악한에게 잘못된 정보를 넘겨받아 자신과 아르헨티나 정부를 공격하도록 이용당했다고 주장했다. 지목당한 인물은 40년 넘게 정보부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다가 작년 말 인적 쇄신 조처에 따라 물러난 전 정보부장 안토니오 하이메 스티우소였다. 대통령은 요직에서 밀려나 불만을 품은 스티우소가 니스만을 통해 앙갚음하려 했다고 비난한 뒤 정보부 해체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페르난데스 대통령의 남편인 고(故) 네스트로 키르치네르 대통령 시절부터 12년 동안 결코 비난하거나 대립한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전문성을 인정받아온 정보부장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 까닭이 의아하다. 며칠 전 스티우소는 부정축재와 자금 세탁 혐의로 기소되었다. 그는 악독한 범죄의 실행자인가? 아니면 혐의를 뒤집어쓴 무고한 희생양인가? 그런가 하면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유대인 사회의 분노를 산 데 이어 시위대에게 ‘암살자’라고 규탄당하고 있다. 또 니스만 검사의 보고서를 엄밀성을 갖춘 법적 문서라기보다 정부의 권위를 손상시키고 대통령의 조기 사퇴를 압박하려는 정치적 문서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21일 시민들이 유대계 시설 테러 사건을 수사하던 알베르토 니스만 검사의 사망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_ AP연합


한 편의 첩보영화처럼 음모와 암투, 비밀공작과 숨가쁜 추적, 공세와 반격이 펼쳐지는 가운데 니스만의 시신은 매장되었다. 그가 드러내려던 비밀 역시 묻힐까? 니스만의 수사와 죽음을 둘러싼 공방은 아르헨티나가 지닌 경제적 문제와 정치적 대립의 어두운 그림자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의 죽음이 타살인지, 자살인지 또는 수사검사가 암시하듯 누군가에 의해 유발된 자살인지에 대한 아르헨티나 사회의 진상 규명 의지와 역량을 호기심 속에 지켜봐야겠다.


박구병 | 아주대 교수·서양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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