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을 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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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손제민의 특파원 칼럼

노동개혁을 한다고요?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9. 1.

지난달 27일 미국 노동관계위원회(NLRB)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본사를 상대로 한 단체교섭권 인정 결정은 그 중요성에 비해 국내의 다른 매체들에서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은 감이 있다. 이 기회에 다시 한번 그 내용을 상세하게 짚으려고 한다.

NLRB는 우리로 치면 노동 관련 분쟁을 심사하는 준사법 기관인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해당한다. 이 사건은 캘리포니아의 폐기물 처리 업체 브라우닝페리스 산업이 재활용센터를 운영하기 위해 인력회사에서 파견받은 노동자 60여명의 본사 노조 가입을 막으려 하면서 불거졌다. 브라우닝페리스에 직접 고용된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은 이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노조원으로 받으려 했지만, 사측은 이들의 노조원 자격을 인정하지 않았다. NLRB의 지방사무소는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노조는 이 결정에 불복해 상급기관인 NLRB에 재심을 청구했고, NLRB는 3 대 2의 표결로 지방사무소의 결정을 뒤집었다.

NLRB가 노조 측 손을 들어준 논리는 간단하다. 브라우닝페리스가 인력파견회사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들에 대한 직간접적인 통제력을 갖고 있는 ‘공동 사용자(joint employer)’로 인정되기 때문이다. 미국 노동법은 공동 사용자로 인정되면 해당 노동자들의 단체교섭 요구를 받아들이도록 하고 있다.

NLRB의 결정문에 나타난 노동자들의 근무 양태를 보면 좀 더 이해가 쉽다. 브라우닝페리스에 직접 고용된 정규직 노동자와 인력회사에서 파견된 비정규직은 재활용센터 작업장에서 서로 섞여 비슷한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정규직은 비정규직보다 시급을 5달러 정도 많이 받는다. 브라우닝페리스는 재활용센터의 작업장을 언제 돌리고 멈출지 결정하고, 비정규직을 포함한 모든 노동자들의 생산성 등을 감독한다. 인력회사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채용, 해고, 교대시간 조정 등을 맡고 있다. 따라서 브라우닝페리스가 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인력회사 못지않은 통제력을 갖고 있다는 노조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 NLRB는 공동 사용자 관련 법 규정이 사측으로 하여금 책임은 지지 않으면서 통제력만 유지하도록 허락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했다.


이번 결정은 당장 맥도널드 등 패스트푸드점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에 큰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맥도널드는 프랜차이즈를 통해 간접 고용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은 이 노동자들의 공동 사용자가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아울러 이번 결정의 역사적 의의는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절 이래 이어져온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노사관계를 뒤집는 데 있다. 1984년 이후 공동 사용자의 의미는 노동자들의 고용, 해고 등에 대한 사측의 직접적 통제력이 입증되어야 한다며 좁게 해석됐다. 하지만 NLRB는 그러한 좁은 해석은 21세기 노사관계 현실에 맞지 않다고 판단했다. 1984년에 비해 지금은 기업들의 교묘한 채용 구조 때문에 비정규직 수가 훨씬 많아졌다. NLRB는 미국 내 인력회사의 파견 노동자 수가 287만명에 달한다고 추정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 7월 여당 의원 10여명과 출입기자 30여명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해 워싱턴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노동개혁이 올해 하반기 중요 과제가 될 테니 도와달라고 했다. 김 대표는 국내로 돌아가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 NLRB의 이번 결정은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과 연대해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대와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미국 분위기를 보여준다.

비록 김 대표가 다녀간 뒤 나오기는 했지만, 미국의 노사관계를 재정립하는 이번 결정을 국내 노동개혁 논의에서 외면하지 않기를 바란다. 말한 맥락이 좀 다르기는 해도 김 대표 본인 입으로 “우리에게는 역시 미국”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손제민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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