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메모]미·쿠바도 악수하는데… 서울·평양 ‘시간마저 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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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손제민의 특파원 칼럼

[기자메모]미·쿠바도 악수하는데… 서울·평양 ‘시간마저 따로’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8. 13.

세계에서 쿠바와 수교하지 않은 마지막 남은 두 나라 중 한 곳의 기자가 쿠바에 들어가는 과정은 간단치 않았다. 취재비자를 받기 위해 미국 주재 쿠바이익대표부(7월20일부로 대사관이 됐다)와 멕시코의 쿠바대사관을 오가며 두 달 가까이 시간을 바쳤지만 결국 허사로 그치고 관광비자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직 미국-쿠바 직항편이 여의치 않아 멕시코를 통해 입국하는 데에는 꼬박 이틀이 걸렸다.

이방인들에게 이렇게 호의적이지 않은 나라에서 과연 취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막상 들어가니 싹 사라졌다.

이 름을 밝히고 인터뷰에 응할 뿐 아니라 집안을 보여주고 타고 가던 말까지 선뜻 내놓는 쿠바인들의 열린 자세에 놀랐다. 이렇게 놀기 좋아하고,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이들이 어떻게 54년간 가혹한 제재를 참고 살 수 있었을까 궁금했다.


많은 쿠바인들이 미국에 대한 원한으로 똘똘 뭉쳐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아바나 혁명박물관에 모셔진 네 명의 위인 흉상 중 에이브러햄 링컨이 있는 것을 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음을 알게 됐다. 다른 세 명은 볼리바르 혁명의 시몬 볼리바르, 쿠바 독립의 아버지 호세 마르티, 멕시코 독립운동가 베니토 후아레스다. 박물관 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50년여간 우리가 뭘 하려 하면 늘 미국이 방해하고 괴롭혀서 괴로웠다. 그렇지만 미국과 적대한 시간은 긴 역사에서 아주 짧은 부분이며, 흑인노예 해방은 우리 같은 피식민 국가 인민이 보기엔 위대한 일이다.”


미·쿠바 59년 만의 정상회담_경향DB



미· 쿠바 재수교는 서로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더 크게 보고 택한 동상이몽의 산물이다. 그런 만큼 양국 내부에서는 너무 많이 양보한 것 아니냐는 불만도 크다. 쿠바는 해외자본의 신식민지가 될까 우려하는 반면, 미국에서는 존 케리 국무장관이 14일의 아바나 미 대사관 개소식에 반체제 인사들을 초청하지 않은 것을 두고 인권 정책의 후퇴라는 비난이 나온다. 양국 관계 개선은 더딜 수밖에 없지만, 이번 화해가 ‘타자’를 알고 싶어하는 두 나라와 제3국의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미국 각료가 쿠바를 찾는 것은 냉전 이후 60년 만에 처음이다. 케리는 이날 미국대사관에 성조기를 게양할 예정이다. 케리는 전용기로 워싱턴에서 아바나까지 3시간 만에 가서, 모든 볼일을 마치고 당일 워싱턴에 귀환한다. 많은 쿠바인과 미국인은 아바나와 워싱턴이 이렇게 가깝고 같은 시간대를 쓴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기자가 쿠바에 다녀온 뒤 생긴 후유증 같은 게 있다. 워싱턴과 아바나의 거리는 줄어들었지만 서울과 평양은 같았던 시간대마저 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워싱턴 | 손제민 특파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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