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풀이되는 지진과 민심
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오관철의 특파원 칼럼

되풀이되는 지진과 민심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4. 25.

땅이 넓어 지진, 홍수 같은 재난이 빈번한 중국에서는 재난이 간혹 수많은 국민들을 통합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다. 재난이 사람들 간의 거리를 좁히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고요한 주말 아침을 깨운 5년 만의 강진을 중국 언론들은 루산(蘆山)지진으로 부르고 있다. 진앙지가 쓰촨(四川)성 루산현이기 때문이다.


2008년 5월12일 쓰촨성 원촨(汶川)현에서 발생한 지진은 ‘원촨 대지진’이라고 대(大)자를 붙인다. 당시 8만60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갔기 때문이다. 루산 지진의 사망·실종자수는 당시보다 훨씬 적지만 재난이 가져온 슬픔과 구조과정에서의 감동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무너진 흙과 벽돌, 바위를 맨손으로 헤쳐가며 가족의 생명을 구한 이야기들은 질긴 생명력을 절감케 한다. 지진 현장에서도 새 생명은 태어났다. 개인주의 성향이 갈수록 강해지는 중국의 젊은이들은 자원 봉사 대열에 합류했다. 중국인들에게 낯익은 국영 텔레비전의 여성 앵커는 위험을 무릅쓰고 산기슭을 누볐다. 동·서간 지역 격차가 크고, 소득 격차로 갈등의 골이 깊은 땅에서 이번 지진은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으로는 원촨에서 루산까지 5년 동안 중국이 무엇을 했는지 의문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이번 지진이 발생한 후 중국이 보여준 모습은 5년 동안 변하지 않은 것도 많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총리가 전용기 안에서 재난 지역의 지도를 펼치고 긴급 대책 회의를 여는 모습이 관영 언론을 통해 대대적으로 보도된 것은 5년 전과 판박이였다. 사람만 달라졌을 뿐이다. 총리가 텐트 구석에서 일회용기에 담긴 죽과 짠지로 아침을 때우는 모습은 감동을 자아냈지만 재난을 서민적 이미지 구축의 기회로 활용하려는 의도로 의심받기에 충분했다. 이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게 시급한 일은 아닐 것이다. 문제는 내정을 책임진 총리를 비롯한 주요 지도자들의 말이 실제 국민들과 접촉하는 지방정부의 하급 조직에 잘 전파되고, 실행되는지 여부다.


결혼사진과 가재도구를 갖고 피난길에 나선 중국 쓰촨성의 이재민 (경향DB)


정작 지진 현장에서는 관리들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많이 들려오고 있다. 한 대학생은 “국가 지도자들은 정말로 우리를 도와주길 원할지 모르겠지만, 밑의 관리들은 제대로 지침을 이행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구호품이 늦게, 편중 지급되면서 당국과 이재민간 긴장도 높아지고 있다. 한 농부는 “우리는 잊혀진 존재들이다. 리커창 총리가 우리 마을을 찾아주길 바란다. 그러면 문제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세계에서 댐이 가장 많은 나라로 쓰촨성에 90% 이상이 집중돼 있다. 2008년 대지진을 경험한 많은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자연 재해로 댐이 붕괴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정신적 고통을 겪어 왔다. 이번 지진으로 그들의 두려움은 더욱 커졌다. 5년 전 대지진 후 규모 8.0 지진에 견디도록 지어진 건물이 규모 7.0 지진에 무너졌다는 중국 언론의 질타도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구조 작업이 일단락되면 앞으로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조치들이 속속 취해지겠지만 벌써 우려가 팽배하다. 구호 성금을 내려는 사람들은 부패 문제 때문에 중국의 공식적 자선단체를 피하고, 투명한 시스템을 갖춘 민간 단체를 찾고 있다. 2008년 대지진 이후 벌어졌던 구호품 빼돌리기 등 부패 관리들의 구태가 반복된다면 이재민들의 절망이 한순간에 분노로 바뀔 수도 있다. 우선은 이재민들의 고통을 헤아리는 당국의 세심한 손길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중국은 이번 지진을 교훈 삼아 재난구조형 사회에서 재난방지형 사회로 하루빨리 탈바꿈해야 한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