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져만 가는 중국의 ‘핵심 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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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오관철의 특파원 칼럼

커져만 가는 중국의 ‘핵심 이익’

by 경향글로벌칼럼 2013. 5. 16.

요즘 중국의 외교를 보면 ‘거침없이 하이킥’이란 표현이 떠오른다. 미군이 주둔하는 오키나와의 귀속권을 당 기관지와 군 전문가 입을 빌려 제기한 것도 그렇고, 지난해 5월 달라이 라마를 만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가 중국에 수모를 당하는 것을 봐도 그렇다. 중국 새 지도부와의 만남을 희망해 온 캐머런 총리는 중국 방문이 불허됐고, 14일에는 전직 각료에게도 불똥이 튀면서 케네스 클라크 전 법무장관의 방중까지 취소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달 베이징을 찾아 ‘양국은 서로 주권과 영토, 상대방의 핵심이익 등을 존중한다’는 공동성명에 합의해 중국을 흐뭇하게 했다.


중국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자국의 핵심이익을 존중하라는 명분을 내세우며 거침없이 질주하고 있다. 핵심이익을 무시한다면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결기가 느껴진다. 핵심이익은 간단히 말해 중국이 전쟁을 불사해서라도 반드시 지키겠다는 이익이다.


원래 중국은 핵심이익을 대만 문제에 한정해 사용했다. 그러다 5년 전부터 티베트와 신장(新疆)에 대해 적용하기 시작했다. 2010년 중국이 베트남, 필리핀 등과 남중국해 영토분쟁을 벌이면서 남중국해도 핵심이익에 포함됐고, 일본과 분쟁 중인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도 핵심이익에 들어가 있다. 한때는 경제성장과 공산당 체제 유지도 핵심이익의 범주에 들어갔지만 지금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와 오바마 미 대통령이 환담하고 있다. (백악관 홈페이지/2011년자료)

앞서 프랑스 대통령이 중국의 핵심이익을 존중하겠다고 밝혔다는 점을 언급했지만 미국도 2009년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핵심이익을 상호 존중한다는 문구가 들어간 공동성명에 합의했다. 이는 미국 대통령이 달라이 라마를 만나게 되면 중국의 핵심이익을 침해하는 것이란 중국의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중국의 의도를 뒤늦게 간파한 미국은 지금은 핵심이익을 존중한다는 표현에 결코 동의해 주지 않고 있다. 뒤집어 말하면 중국이 서방의 강대국으로부터 핵심이익을 존중한다는 표현을 이끌어 내는 것은 중요한 외교적 성과가 되는 셈이다.


지금의 중국이 핵심이익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중국이 핵심이익이라고 규정하는 순간 상대방에게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신호를 주게 되기 때문이다. 비록 중국의 내부 단결은 강해질지 모르나 지역에서는 긴장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일본의 극우 세력이 동아시아 분쟁의 원인 제공자 역할을 하고 있지만 중국의 민족주의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이대로 가면 중국이 인도와의 국경분쟁 지역이나 한반도 서해상, 이어도마저 핵심이익이라고 선포하진 않을까. 인도에서는 중국이 핵심이익을 확장하려 하고 있다며 이를 억제하기 위한 군사력 증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중국이 앞으로 계속 핵심이익의 범위를 확장하면서 영토팽창과 패권을 추구한다면 동아시아 불안의 근원이란 비판이 강해질 수도 있다. 미국의 개입에 대한 정당성이 강화되면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띨 가능성도 있다.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전 일본 총리가 중·일 수교를 위해 1972년 베이징에 왔을 때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를 만났다. 다나카가 “일본이 중국에 잘못된 짓을 했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이자 저우언라이는 “그런 말은 차를 따르던 부인이 잘못해서 손님 옷에 차를 떨어뜨렸을 때나 하는 말”이라고 했다고 한다. 지금 중국 지도자들에게 이런 말을 기대할 수 있을까. 중·일분쟁뿐 아니라 한반도 갈등까지 지도자들의 ‘통 큰 외교’가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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