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정의 파리통신]못생겨 버려진 채소, 만찬을 베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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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정의 파리통신]못생겨 버려진 채소, 만찬을 베풀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10. 16.

목수정 | 작가·파리 거주


 

세계가 겪고 있는 식량위기처럼 지구촌을 이끌어 가고 있는 현 시스템의 모순을 잘 드러내는 문제는 없어 보인다.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세계에는 8억7000만의 인구가 배고픔에 시달리는 반면, 땅과 바다에서 나오는 식량의 3분의 1은 사람 입 속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쓰레기통에 들어간다. 


예를 들어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바나나를 수출하는 에콰도르는 연간 14만6000t의 바나나를 버리고 있다. 이는 에펠탑 무게의 15배에 달한다. 런던에서는 1만2000대의 이층버스를 가득 채울 수 있을 만큼의 음식이 매년 버려지고 있다. 프랑스에선 1년간 국민 1인당 260㎏의 음식물이 버려진다. 식탁에서 남겨 버려지는 음식물들이 대부분인 듯하지만, 이는 전체 버려지는 음식에서 3분의 1에 해당한다.


 또 다른 3분의 1은 수확단계에서부터 선별된다. 맛과 영양 면에서는 전혀 뒤지지 않아도, 단지 표준적인 규격에서 동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버려진 뒤틀린 당근, 달팽이가 갉아먹은 배추, 울퉁불퉁한 토마토가 바로 이것들이다. 수송과 보관, 가공, 유통 단계에서 나머지 3분의 1이 버려진다. 


이 중 농민들에 의해서 생산 현장에서 세상에 나오자마자 버려지는 농산물들이야말로 가장 안타까우며, 가장 개선하기 쉬운 낭비에 해당한다. 이런 모순된 낭비가 반복되지 않게 하기 위해, 유럽연합(EU)은 농수산물을 마치 공산품처럼 일정한 규격을 정하는 모든 기준을 폐지하기도 하였으나, 여전히 상인들은 고객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못생긴 야채, 과일들을 가차 없이 걸러내며, 이러한 습관은 생산지에서부터 버려지는 농산물을 양산해 왔다.


인류가 지구 전체를 향해 저지르고 있는 이 거대한 범죄를 종식하고, 낭비 없는 식생활이라는 꿈에 다가서기 위해선 지금의 시스템을 개선하게 할 ‘충격’이 필요하다고 믿은 사람은 영국 청년 트리스트람 스튀아르다. 이미 지난해 런던에서 같은 행사를 벌인 바 있는 이 청년은 지난 토요일, 프랑스의 방송사 ‘채널 플러스(Canal+)’와 함께 파리시청 앞에서 산지에서 버려진 야채와 과일로만 만든 5000명을 위한 연회를 벌였다. 


(경향신문DB)


영국의 한 농가에서 자라난 35살의 이 청년은 어릴 때부터 농부들이 멀쩡한 농산물들을 유통업자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버리는 데에 심각한 문제를 느끼고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십자군이 되기로 했다. 이 날 행사에는 꼬부라진 당근, 울퉁불퉁한 토마토 등 생산지에서 버려진 야채들만 모아 만든 카레, 사과주스, 샐러드 등이 마련됐고, 낭비를 최소화하는 요리법이 소개되는가 하면, 요리 과정에서 잘라내 버린 식재료를 재활용하는 방법들이 소개됐다. 방송사 ‘Canal+’는 버려지는 식량과 이에 대한 해법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17일 밤(현지시간) 상영할 예정이다.


점증하는 세계 식량위기는 부유한 나라 사람들이 단지 알뜰히 먹지 않는 문제로만 빚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가 사로잡혀 있는 세계화 시스템, 신자유주의적 논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무지막지하게 버려지는 식량은 농업에서마저 규격 표준화, 기업화, 대량생산화, 글로벌화가 초래한 필연적이고 무서운 결과라는 것이다. 


프랑스 인권위원회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학교 급식 문제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에 대해 프랑스 녹색당은 학교 급식에서 유기농식단의 일반화, 지역 식재료 사용, 가공식품이 아닌 신선한 재료 사용, 채식 식단에 대한 선택의 존중, 음식물쓰레기 최소화를 제안한다.


5000여명이 차가운 가을비 속에서도 신나게 북적였던 파리시청 앞, 곳곳에 붙은 포스터 속에 못생긴 당근은 이렇게 외치고 있었다. 부당하게 버려진 야채들에게 희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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