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조원의 구멍 누가 메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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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8조원의 구멍 누가 메웠는데

by 경향글로벌칼럼 2012. 10. 30.

목수정 | 작가·파리 거주 bastille@naver.com


 

지난 2008년, 프랑스에서 업계 2위의 시중은행 소시에테 제네랄(Societe Generale)의 한 딜러가 선물거래로 단숨에 49억유로(약 7조6000억~8조원)의 손실을 발생시키는 사상 최악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무디스 등 국제 신용평가 기관들이 사고 당일 소시에테 제네랄의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했음은 물론, 소시에테 제네랄의 파산 또는 다른 은행과의 합병은 불가피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무렵 ‘위기(Lacrise)’라는 말이 프랑스 전체를 뒤덮기 시작했던 것 같다.


 지난주, 문제의 딜러에 대한 항소심이 열렸다. 프랑스 형사법원은 제롬 케르비엘이라는 전 딜러에게 징역 5년에 그가 발생시킨 49억유로에 대한 손해배상형을 내렸다. 은행 측 변호사는 현재 그의 재정상태를 고려하여 그들이 요구하는 손해배상 금액은 조정될 수 있음을 재빨리 덧붙였다.


유럽 최고의 거부, 로레알 그룹의 상속녀 릴리안 베탕쿠르의 월수입으로 상환해 나가자면 단 12년 걸리겠지만, 프랑스 월 최저임금으로 갚아나가자면 38만6892년이 걸려야 갚을 수 있는 금액이다. 


소시에테 제네랄은 파산하지도, 합병되지도 않았고 오늘까지 건재하다. 몇몇 간부 사원들이 감독 소홀 책임으로 경질되었을 뿐, 오직 제롬 케르비엘이라는 30대 남자만이 이 사태에 대한 유일한 죄인으로 법정에 섰다.


은행 측은 그가 다른 거래인의 명의를 도용하여, 상사의 동의 없이 단독으로 선물상품에 대한 투기를 감행했다가 이 같은 손실을 냈다고 주장했다.


제롬 케르비엘 프랑스 제2은행 소시에테제네랄 선물 트레이더 (경향신문DB)


제롬 케르비엘은 자신이 쳇바퀴 속에서 정신을 잃은 햄스터처럼 잠시 현실감각을 상실하고 지나친 모험을 감행하였으나, 이는 오직 은행에 최대의 이익을 남기기 위한 목적이었을 뿐이며, 당시 은행 측은 그가 위험한 투기를 감행하는 정황을 명백히 알고 있었고, 오히려 은행이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사태로 발생한 손실에 대한 모든 책임까지 자신에게 전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소시에테 제네랄의 이사이며,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후원자였고, 지금은 미트 롬니 후보의 후원자이기도 한 로버트 데이가 은행의 막대한 손실이 밝혀지기 며칠 전 150만주의 주식을 성급히 팔아치우는 등, 은행 간부진은 이미 이러한 위기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던 정황이 드러나고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해 법정은 침묵을 지켰다.


언젠가부터 브레이크 없이 투기집단이 되어버린 은행들. 그들이 투기로 잃은 손실이 유럽 전체를 뒤엎은 ‘경제 위기’의 주 원인임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8조원의 손실에도 불구하고 소시에테 제네랄이 멀쩡히 건재한 것은, 그 거대한 구멍이 당연히 국고, 즉 국민의 세금으로 메워졌기 때문이다. 


정부는 금융권이 촉발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 재정을 축소하고, 공무원 수를 줄이며, 병원문을 닫았다. 


“당신들의 손실은 당신들이 메워!”, “우리의 삶은 당신들의 이익보다 소중해”라는 슬로건은 단 한 사람의 은행원을 향한 것은 분명 아니었을진대, 무릇, 제롬 케르비엘의 죄목은 횡령이 아니라 업무상 과실이었을진대, 오직 단 한 사람을 법정에 세워놓고, 시침 뚝 떼고, 재판을 진행하는 이 희한한 광경. 


검은 양복에 단추를 풀어헤친 흰 셔츠를 입고, 매서운 눈빛으로 법정을 나서는 제롬 케르비엘에게 동정이 가는 건 아니지만, “이건 억지스러운 가면무도회고, 지적인 사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의 변호사의 말이 가슴에 와서 꽂히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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