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독일 '스파이 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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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독일 '스파이 파장'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7. 14.

-독일이 미국 중앙정보국(CIA) 베를린 책임자에게 추방령을 내렸다고. 양국 관계가 심상치 않다는데.


독일 정부가 지난 10일 베를린 주재 미 대사관 소속으로 일해온 CIA 베를린 책임자에게 출국권고를 했다. 독일 정부는 ‘추방’이라는 표현은 쓰지 않고 “미국 정보기관의 독일 내 활동에 대한 의문이 생긴데 따른 퇴거요구”라고만 설명했으나, 사실상 추방령이었다. 현지언론 슈피겔은 독일 정부의 이런 강경대응을 “외교적 지진”이라 표현하며 양국 간 긴장이 몹시 높다는 걸 보여주는 일이라 풀이했다. 발단은 이달 초 독일 연방정보국(BND) 직원 하나가 미 CIA에 포섭돼 이중간첩 행위를 하고 있었다는 게 들통난 거였다. 뒤이어, 독일 국방부에서도 비슷한 혐의를 가진 직원이 적발됐다.


-독일 측은 자국 정보기관들에게 내부 단속령을 내렸다는데.


독일 총리실은 자국 정보기관들에게 별도로 통보할 때까지 미국 정보기관들과의 협력을 최소한으로 제한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테러위협이나 아프가니스탄 주둔 독일군의 안전 같은 긴급한 안보 관련된 내용이 아니면 사실상 미국 정보기관과의 협력을 중지하라는 지시라고 독일 언론들은 분석했다. 정보국과 국방부에서 스파이 혐의자가 나타났기 때문에 정부가 내부 감찰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감찰이 앞으로 몇 달 간 지속될 것이기 때문에 스파이 문제는 독일에서 계속 이슈가 될 것 같다. 몇몇 언론들은 독일 국내정보 담당기관에서도 스파이로 의심되는 인물에 대한 첩보가 있다면서 정부 내에 스파이가 더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스파이 갈등의 파장이 일파만파로 커지는 것같은데...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온 건지.


외국에서의 간첩행위를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해온 ‘오만한 미국’에 대한 불만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 국가안보국(NSA)의 개인정보수집을 폭로한 뒤 독일에서는 미국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맹방인 독일조차 정보수집 대상이었다는 것,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휴대전화까지 감청 당했다는 것, 독일 정보기관이 미국 측의 정보수집에 협력했다는 것이 잇달아 폭로되자 여론이 들끓었다. 나치 시절과 동독 시절 ‘비밀경찰’의 악몽을 잊지 않는 독일 국민들은 사생활 침해와 정보수집을 몹시 민감하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메르켈 정부는 미국에 해명을 요구하면서도 NSA 사건 뒤에 미국에 대한 강경 비난을 자제해왔던 것 같은데.


직접적인 비난은 자제해왔다. 그러나 이달 들어 스파이 사건이 잇달아 드러나면서 쌓이고 쌓인 분노가 폭발했다. 독일 당국은 당초 간첩행위를 한 정보요원이 러시아에 고용된 것으로 보고 덫을 놔 체포했다. 하지만 러시아와 미국에 동시 포섭된 이중스파이임을 알고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스노든이 폭로한 NSA의 정보수집은 기본적으로 통신데이터를 모으고 신호를 감청하는 ‘시긴트(SIGINT)’ 활동이다. 하지만 이번에 독일 당국이 적발한 CIA의 간첩 공작은 사람을 동원한 첩보 즉 ‘휴민트(HUMINT)’라는 점이 다르다. 독일에서까지 노골적으로 휴민트 활동을 한 것에 메르켈 정부와 의회 모두 격분한 것으로 전해졌다.


-스파이 행위를 들켜놓고도 미국이 ‘무성의’로 일관한 것이 독일을 더 격앙시켰다는 얘기도.


스파이짓이 드러난 뒤에도 미국이 성의 있는 태도를 보여주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존 브레넌 CIA 국장과 존 에머슨 독일 주재 미국대사는 독일 측의 해명요청에도 확답을 주지 않았고, 재발방지 약속조차 하지 않았다고. 이로 인해 독일 측은 미국이 NSA 사건 이후 유럽국들을 휩쓴 분노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으며, 오바마 정부가 스파이문제에 대해 경각심을 못 느끼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커졌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자 10일 토마스 데 마이치에레 내무장관,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외무장관, 페터 알트마이어 총리실장이 긴급 통화 끝에 ‘초강력 대응’으로 의견을 모았고, 기피인물 지정 같은 외교적 절차 없이 곧바로 CIA 책임자에게 출국을 요구했다고 한다.


-메르켈 총리가 이례적으로 강하게 나온 데에는 국내정치적인 요인도 있었다고.


가뜩이나 정부가 NSA 정보수집에 미온적으로 대응한다는 국민들의 불만이 높은 상황에서, 가만 있다가는 메르켈 정부가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불안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메르켈 총리는 “동맹에 대한 스파이짓은 에너지 낭비”라면서 시리아 내전이나 이라크 분쟁에나 더 집중해야 한다고 미국을 일갈했다. 또 지난 12일에는 독일 공영 ZDF 방송과 인터뷰에서 “(추방 조치로) 무엇인가 변화가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메르켈은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서로 협력하는 파트너라고 할 수 없다, 우리는 더 이상 냉전 시대에 살고 있지 않다”면서 미국에 대한 비판을 되풀이했다.


-이번 일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뭔가.


독일 측의 격앙된 태도와는 좀 인식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11일 “차이점이 있다면 비공식적인 채널을 통해서 해결할 생각이고, 미디어를 통한 방식은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뒤에서 의논할 일이지 왜 공개를 했느냐고 독일 측에 유감을 표한 것이다. 사건의 여파가 커지니까 독일 달래기에 나서고는 있는 듯하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13일 “독일은 여전히 진정한 미국의 우방”이라고 강조했다. 이 선에서 봉합을 하자는 뜻으로도 읽힌다.


-일각에서는 ‘제2의 에드워드 스노든’이 있는 게 아니냐 하는 얘기도 나온다는데.


독일이 잇달아 미국 스파이를 색출해낸 데에는 누군가의 제보가 있었던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물론 증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 의회 전문 매체인 힐(The Hill) 등은 미국 정보기관 내부에서 ‘제2의 스노든’이 출현해 이번 사태를 폭로했다는 분석과 함께 독일은 물론 각국으로도 ‘미국 스파이’ 색출 작업이 확산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스노든의 폭로 내용을 가디언을 통해 처음 보도했던 미국인 저널리스트 글렌 그린월드 기자도 “또 다른 누설자가 존재하는 게 분명해 보인다”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다.


구정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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