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폼페이오 방북’ 하루 만에 번복한 트럼프 외교의 불안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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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사설]‘폼페이오 방북’ 하루 만에 번복한 트럼프 외교의 불안정성

by 경향글로벌칼럼 2018. 8. 28.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4일(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북한 방문 계획을 전격 취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한반도 비핵화가 충분한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느끼지 않기 때문에 폼페이오 장관에게 북한에 가지 말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우리의 중국에 대한 더 강경해진 무역 입장 때문에 중국이 예전만큼 비핵화 과정을 돕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비핵화 협상에 진전이 없고, 북·중 밀착이 강화되는 상황에 대한 불만이 방북 취소의 이유라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불과 며칠 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2차 정상회담 가능성을 시사한 점에서 보면 방북 취소는 당혹스럽다. ‘성추문 의혹’과 관련해 측근들이 유죄를 받고, 미·중 무역협상이 성과없이 끝나는 등 국내외 상황이 좋지 않은 가운데 확실한 방북 성과가 나오지 않을 경우 곤경에 처할 것을 우려한 처신일 수 있다. 판을 흔들어 북한의 양보를 이끌어내려는 트럼프 특유의 협상전술일 가능성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건 한 나라의 외교장관이 공식 발표한 외교일정을 하루 만에 번복하는 것은 전례가 드문 일이다. 당사국들의 입장을 감안하지 않는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통행식 외교는 실망스럽기 짝이 없다. 북한의 대미 불신이 커지면서 비핵화 의지가 약화될까 우려된다. 북·미 협상 진전을 학수고대해온 한국인들을 낙담시킨 점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번 방북 취소는 임박한 한반도 외교일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가 중국의 비협조에 불만을 터뜨린 상황에서 북한 정권수립 70주년인 9·9절에 즈음해 이뤄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북이 자칫 사태를 더 꼬이게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폼페이오의 방북 성공을 전제로 거론돼온 ‘유엔총회 종전선언’ 구상도 불투명해졌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할 필요는 없다. 트럼프가 “김 위원장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다. 곧 만나길 고대하고 있다”며 북·미대화의 흐름을 이어갈 뜻을 내비친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반응을 지켜봐야 하지만 이번 사태는 한반도 비핵화 여정에서 벌어질 수많은 해프닝 중 하나일 뿐이다. ‘북·미 협상’ 구도 자체가 변질됐다고 볼 것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소와 9월 정상회담 등 남북 간 일정을 예정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물론 신중하게 상황을 평가하고 전략을 좀 더 가다듬을 필요가 있지만, 우물쭈물하다 보면 게도 구럭도 다 놓칠 수 있다. 북·미 기상도에 휩쓸리다간 한반도 정세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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