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동해’ 중국의 ‘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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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오관철의 특파원 칼럼

한국의 ‘동해’ 중국의 ‘동해’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7. 9.

중국지도출판사에서 펴낸 중학생용 지리 교과서 14페이지에는 우리나라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돼 있다. 교과서 안에는 아시아 국가와 지역이란 제목의 지도를 포함해 세계 지도 등에 모두 그렇게 표기돼 있다. 대신 중국이 일본과 영토분쟁을 벌이는 댜오위다오(釣魚島·일본명 센카쿠열도)가 있는 해역, 우리가 흔히 동중국해라고 부르는 곳이 동해로 표기돼 있다. 한국 학생들이 동해로 알고 있는 곳을 중국 학생들은 일본해로 교육받고 있는 것이다. 중국 정부기관이 발행하는 지도나 주요 박물관·미술관 등에도 우리나라 동해는 모두 일본해로 표기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4일 중국 공산주의청년단 기관지 중국청년보에 눈길을 끄는 광고가 실렸다. 한국 홍보 전문가인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 등의 노력으로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취지의 광고가 실린 것이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방한에 맞춰 게재된 데다 한·중 관계가 밀월기라 중국인들의 반응도 호의적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중국 언론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니 반대한다는 의견이 적잖이 눈에 띄었다. 이유를 보면 “일본해를 동해로 바꾸면 중국의 동해는 어떻게 되는가?”, “우리와 관계없는 일”, “조선해로 하면 어떤가” 등의 의견이었다. 중국 지도에 두 개의 동해가 표기되면 곤란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상대적으로 많았고 “한국은 앞으로 황해도 서해로 바꿔달라고 할 것”이란 감정적 반응도 있었다. 한국과 일본의 분쟁이 일어나면 대체적으로 한국의 손을 들어주었던 중국인들의 모습과 확연히 다른 느낌을 줬다. 베이징 신경보 등 중국 언론들도 일본해의 동해 표기 문제는 오래된 문제로 각각 자신들의 증거를 제시해 왔다고 소개할 뿐 특별히 한국에 우호적인 톤으로 기사를 싣진 않았다.

중국이 동해의 명명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바꿀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다. 중국이 일본해 표기를 동해로 바꿔주면 국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은 결코 간단치 않을 것이다. 하지만 베이징 외교가의 의견을 종합하면 중국 정부는 일본해 표기를 동해로 바꾸자는 한국 측 요구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일본해가 여전히 국제 사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명칭이란 점을 내세우고 있다. 일각에서는 동해를 동한국해 또는 한국 동해라고 부르는 방법도 제시한다. 하지만 이 역시 중국으로서는 선뜻 수용하기 어렵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북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입장은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뉴욕타임스는 북한이 동해를 코리아 동해로 부르는 방안을 원하고 있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에서 동해를 일본해(Sea of japan)으로 표기한 지도 (출처: 경향DB)


중국으로서는 일본을 괜히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비록 과거사 문제로 중·일 관계가 멀어지고 있지만 한국 입장을 받아들여 동해로 표기한다면 일본의 반발은 불보듯 뻔하다. 한국인들의 인심을 얻기 위해 한·일 간 바다 명칭 다툼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는 게 중국의 속내일 것이다. 따라서 아직은 일본해를 동해로 바꾸는 것은 고사하고 동해 병기조차 벅차 보인다.

일본해의 동해 표기 문제는 일본이 누려온 지위를 흔들어야 하는 험난한 싸움이다. 하지만 과거 어느 때보다 현재 양국 분위기가 좋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에게는 기회일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지금처럼 한국이 중국에 큰소리칠 수 있는 시기가 없었다고 얘기하고 있다. 우리의 합당한 요구를 중국이 계속 외면하는 것도 중국으로서는 부담일 수 있다.

국제수로기구가 일본해 지명을 채택한 1929년은 일본이 한국을 강점했던 시기다. 한국에 발언권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바다 명칭을 정하는 2017년 국제수로기구 총회 이전에 중국 내 동해 표기 문제에 돌파구가 열려야 한다. 그러려면 계속 우리 입장을 전달하면서 중국 여론을 바꿔나가야 한다. 물론 중국에 대한 환상은 금물이란 점도 명심해야 한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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