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칼럼]중국 축구의 변화 열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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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중국 축구의 변화 열망

by 경향글로벌칼럼 2014. 6. 18.

대국적 자존심이 강한 중국인들이 외국인과 대화할 때 가장 꺼리는 주제 중 하나가 바로 자국 축구다. 국력과 축구 실력간 격차가 중국만큼 큰 나라가 있을까? 월드컵에는 2002년 한 차례 진출하는데 그쳤고 현재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103위다. 브라질월드컵 출전 32개국 중 코스타리카와 크로아티아는 인구가 500만명에 못미치나 만만히 볼 수 없는 팀들이다.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미국은 국내에서 축구 인기가 바닥이지만 브라질월드컵 조별 예선 1차전에서 가나를 꺾었다. 축구 실력이 인구나 국력과 비례하는 건 아니겠지만 중국인들로서는 꽤 낯 뜨거운 현실일 수 있다.

하지만 중국의 브라질월드컵 열기는 본선 진출국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 수천만명이 새벽 경기를 시청하고 미디어들의 취재 열기도 뜨겁다.

인터넷포털 QQ를 보유한 텅쉰은 50명의 기자를 브라질월드컵에 보냈다. 전 경기를 중계하는 국영 CCTV는 경기 시작 전부터 선수들의 라커룸을 보여주고 버스를 타고 도착한 선수들을 쫓고 있다.

엉뚱한 상술과 아이디어도 속출하고 있다. 새벽까지 월드컵을 시청하느라 출근을 피하고 싶은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가짜 진단서를 판매한다는 광고가 인터넷 쇼핑몰에 등장했다. 막판에 정부의 압력으로 취소되긴 했지만 승부를 예측하기 위해 판다가 동원될 뻔했다. 관영 매체들은 중국에서 만든 월드컵 제품들이 브라질월드컵을 정복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브라질에 중국 축구팀은 없지만, 중국의 존재감이 브라질을 지배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가득해 보인다. 중국인들의 축구 사랑이 이번 월드컵 때문만은 아니다. 평소 국내 축구 열기도 뜨거워 베이징궈안(北京國安)팀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베이징 동부에 있는 노동자 경기장 일대는 자동차가 몰려 수시간 동안 혼란에 빠진다.

중국 축구대표팀 하오준민이 브라질 월드컵 예선 이라크전에서 공중볼을 다투고 있다. (출처: AP연합뉴스)


현재 중국은 축구계 개혁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탁구선수 출신을 축구협회장에 앉혔고 축구를 중국의 국기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사업가들은 경제적 이유가 있겠지만 프로리그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으며 클럽팀들의 경기력을 높이고 있다. 2006년 이탈리아를 월드컵 우승으로 이끈 마르셀로 리피 광저우헝다(廣州恒大) 감독은 연봉이 무려 150억원 수준이라고 한다. 중국 언론은 브라질월드컵에 참가한 선수 중 6명이 중국 리그에서 뛰고 있다며 역사상 가장 많은 숫자라고 높아진 자국 축구 수준을 선전했다.

중국 축구의 변신을 향한 열망 뒤에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있다. 이번 월드컵 결승전을 현장에서 관람할 예정인 시 주석은 대단한 축구광이다. 2011년 부주석 당시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박지성 선수의 사인볼을 선물하자 “축구 이야기를 하면 좋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면서 3가지 희망사항을 늘어놨다. 바로 중국의 월드컵 참가, 월드컵 개최, 월드컵 우승이다. 집권 후 중국의 꿈을 정치 슬로건으로 내건 시 주석의 월드컵에 대한 애착은 단순히 개인적 취향을 벗어나 축구야말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과 어울리는 스포츠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민족을 단결시키는 힘이 있는 월드컵에 중국이 진출한다면 소수민족 문제와 계층간 갈등 등 국내의 모순을 순식간에 덮을 수도 있다.

물론 중국 축구의 장래를 암울하게 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유를 보면 축구계에 부패가 심해 실력이 있어도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 아이들에게 공부만 강조하기 때문에 유소년 축구가 활성화될 수 없고 저변 확대가 어렵다는 등 나름 근거 있는 분석도 나온다. 시 주석이 물러나는 시점은 2023년 3월. 10년 임기 내에 그가 말한 월드컵 비전 3가지를 이루기 위해 얼마만큼 초석을 다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축구 굴기가 중국인들의 꿈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국가적 목표가 되고 있다는 점이 왠지 가볍게 여겨지지 않는다.


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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