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사우디 왕자의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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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여적]사우디 왕자의 기부

by 경향글로벌칼럼 2015. 7. 3.

사우디아라비아 살만 국왕의 조카이자 세계 34위의 거부인 알왈리드 빈 탈랄 왕자가 개인 재산 320억달러(약 36조원)를 전액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현지 언론은 일제히 “라마단 기간 중 통 큰 자카트(zakat)를 실천했다”고 칭송했다. 왕자 자신도 “자선은 내 이슬람 신앙의 본질”이라고 말해 종교적인 신념을 기부의 배경으로 설명했다.

자카트는 아랍어로 ‘정화’ 또는 ‘정결’의 뜻으로 자선이나 기부행위를 지칭한다. 이슬람에서 신자들에게 지킬 것을 요구하는 이른바 ‘다섯가지 기둥(신앙고백, 예배, 자선, 금식, 성지순례)’ 중 세번째 의무다. 자신의 소득 중 일부를 떼어 사회에 기부하는 것으로 전 재산의 최소 2.5%를 내도록 돼 있다. 기독교의 십일조와 비슷한 성격이지만, 교회에 내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줄 수 있다는 점 등이 다르다. 자카트에는 경제적 약자를 돕는 부의 재분배 의미가 들어 있다. 가난한 순례자나 빈민, 파산자, 새로 들어온 신자 등의 구제에만 사용하며, 사원이나 학교 건립 등에는 못쓰게 돼 있다. 돈을 내지 못하는 사람을 배려해 금전적 기부뿐 아니라 정신적인 기부나 봉사 등도 인정한다.


알왈리드 빈 왕자_경향 DB



사실 알왈리드 왕자가 검약을 실천해온 인물은 아니다. ‘중동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지만 버핏처럼 경비원 없는 시골집에 살거나 10년 넘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지는 않는다.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 있는 그의 집은 방 400개짜리 초호화 맨션이고, 최고급 자동차를 200대나 굴린다. 에어쇼 현장에서 수표를 꺼내 3억1900만달러짜리 에어버스를 구입하는 사치도 누린다.

불교에 ‘빈자의 일등(貧者一燈)’이라는 우화가 있다. 왕과 장자들이 석가모니에게 바친 만 개의 등보다 가난한 여인의 정성 어린 등 한 개가 훨씬 더 잘 타올랐다는 것이다. 석가모니도 “이 등불은 약하지만 여인의 큰 보리심이 담겨 있어 바닷물을 쏟아도 꺼지지 않을 것”이라며 작은 기부에 담긴 정성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청빈을 즐기든 호사를 누리든 자기가 가진 전부를 내놓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주는 사람뿐 아니라 받는 사람의 마음까지 정화하고자 하는 것이 자카트의 취지라면, 알왈리드 왕자 역시 자카트의 진정한 실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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