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리포트] 파이로프로세싱의 ‘불편한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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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워싱턴리포트] 파이로프로세싱의 ‘불편한 진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11. 2.
한국은 지금 핵폐기물 처리문제, 핵무기 전용 가능성 없이 핵연료를 재활용하는 문제, 원전수출 걸림돌 제거 등 핵 이용에 관한 여러가지 고민을 안고 있다. 그런데 한국 원자력계의 설명을 인용한 국내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같은 문제는 파이로프로세싱(사용후 핵연료의 건식처리) 방식을 도입하면 일거에 해결된다. 2014년 3월로 만료되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에서 반드시 이 기술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전개 과정에서 말하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 있다. 2007년 이후 미국에서 발표된 논문들과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파이로프로세싱은 여전히 핵무기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는 재처리 방식 중 하나다. 만약 허용한다 해도 국제 비확산체제를 흔드는 협정이 미국 의회 비준을 통과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국에서는 파이로프로세싱으로 핵폐기물을 2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게 가능하려면 파이로프로세싱 외에도 고속로라는 새로운 원자로가 필요하다. 세계 각국이 1000억달러 이상을 투입해 50년간 연구하고도 아직 성공하지 못한 기술이다. 미국·일본도 고속로 완성을 2050년 이후로 미뤘다. 또 고속로가 개발돼도 이미 쌓인 1만t 이상의 핵폐기물을 처리해 원료로 태우려면 엄청나게 많은 고속로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설명은 누구도 자세히 하지 않는다. 

2016년에 핵폐기물이 포화상태가 된다는 주장에도 다른 견해가 있다. 밀집저장하거나 원전부지에 임시 저장시설을 더 지을 경우 그보다 십수년은 버틴다는 것이다. 우라늄 가격이 급격히 오르기 때문에 핵연료 재활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핵연료 제조과정에서 우라늄 단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어서 큰 변수가 되지 않는다. 최소 몇십년 동안은 재활용하는 것보다 우라늄 연료를 사다 쓰는 게 훨씬 경제적이다. 

원전 수출에 불리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약하다. 현재 원전을 수출하면서 재처리 기술을 함께 파는 나라는 없다. 지금처럼 미국과의 합작으로 원전을 수출하는 것이 사고 위험부담을 줄이고 시장개척에도 유리하다는 견해도 있다. 그럼에도 앞으로 수십조원의 국민세금이 들어가야 하고 효율성도 불투명한 미완의 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에만 목을 매는 이유가 궁금하다.

만일 ‘핵주권’ 차원에서 원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재처리를 요구하는 게 낫겠다. 더 이상 고압적인 태도로 일일이 간섭하지 말고 자유롭게 원자력을 연구·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하는 편이 솔직해 보인다. 1970년대 한국이 핵개발을 시도한 ‘전과’가 있긴 하지만 모든 나라가 핵무기를 원했던 냉전시대에, 그것도 북한과 대치하고 있었던 한국이 잠깐 핵개발을 꿈꿨다고 해서 지금까지 발목을 잡힐 이유는 되지 못한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더구나 한국이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와 같은 미국 주도 비확산 체제에 적극 참여하고 있고 미국도 한국을 ‘린치핀’과 같은 동맹국이라고 하니, 지금처럼 한·미 관계가 좋을 때가 아니면 언제 또 그런 요구를 하겠는가. 그럴 배짱이 없다면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 재처리 외의 다른 방법도 고민해 봐야 한다. 파이로프로세싱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파이로프로세싱이 아니면 안된다는 주장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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