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리포트] '北정권 붕괴’만 기다리는 한국과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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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워싱턴리포트] '北정권 붕괴’만 기다리는 한국과 미국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12. 14.
시인 황지우는 세상에서 기다리는 것처럼 가슴 아리는 일이 없다고 했지만, 그건 아마도 간절한 바람 앞에 기다리는 것밖에 다른 수가 없고 기다려도 온다는 보장이 없다고 느낄 때 이야기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이 머지않았다”며 북한 정권이 붕괴하기를 더 기다리겠다고 하니, 아직 가슴이 아릴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특단의 복안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기다리면 무너지고 항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모양이다. 아니면 골치아픈 북한 문제와 씨름하기 싫어 피하기만 한 오랜 세월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북한에 대한 한·미의 기다림은 오랜 전통과 뿌리가 있다. 냉전 구도가 해체되고 동구권 공산국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던 1980년대 말, 노태우 정부는 이른바 ‘북방외교’라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탈냉전적 국제질서에 맞는 외교전략을 수립하자는 취지로 소련·중국과 수교를 하고 한국 외교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러나 북방외교의 목적 중 하나는 북한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한국은 북한이 미국과 수교하는 것은 결사적으로 막았다. 한반도에만큼은 냉전구도를 고착화시키는 ‘반쪽짜리 탈냉전 외교’였던 셈이다. 동구권처럼 북한도 조만간 무너질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비롯된, 긴 기다림의 시작이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는 임기 초반 미전향 장기수 북송, 대북 쌀지원 등의 유화적 대북정책을 펴다가 북한의 호전적 반응에 이내 냉담해졌다. 북·미가 핵협상을 벌이는 동안 정부는 한국이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미국 역시 제네바 합의로 북한 핵문제를 ‘동결’시키고 궁극적 해결은 10년 정도 뒤로 밀어놓았다. 뒷날 빌 클린턴 행정부 인사들이 고백한 것처럼 북한이 그 기간 안에 붕괴할 것으로 믿고 기다린 것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역시 북한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다. 그러다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하자 얼마 안 남은 임기 동안 외교적 업적을 만들 요량으로 북한과 대화를 시작했다. 당시의 단계적 접근법은 쉬운 문제부터 풀자는 의도였기 때문에 어려운 협상은 모두 뒤로 돌렸다. 북한과 쉬운 합의를 거듭하면서 이를 이행하다 보면 언젠가 북한에 천재지변이 생겨 일거에 수가 날 것이라는 기다림이 여기에도 작용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이명박 정부와 뜻이 맞아 아예 노골적으로 기다리고 있다. 북한이 비핵화에 진정성을 보이고 올바른 선택을 해야 대화한다는 것이다. 진정성이니, 올바름이니 하는 말들은 외교 용어가 아니다. 따라서 ‘전략적 인내’는 정책이 아니라 단지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태도일 뿐이다. 상대가 결혼하겠다는 진심을 보여야 함께 차 마시고 영화 보러 갈 수 있다는 태도나 마찬가지다. 

한·미·일은 중국 때문에 일이 안된다며 중국을 탓한다. 중국의 어정쩡한 태도가 밉기는 하지만 한국을 비롯해 나머지 국가들은 얼마나 진지하고 엄숙하게 북한 문제를 고민해봤는지 묻고 싶다. 

세계 최강대국들이 머리를 맞대고도 북한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그것은 외교가 아니다. 감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 말고, 진지한 정책을 갖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감내하면서 진짜 외교를 해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지금 감이 떨어진다 해도 누구의 입으로 떨어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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