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리포트] 한·미 동맹의 ‘발목지뢰’ 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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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워싱턴리포트] 한·미 동맹의 ‘발목지뢰’ FTA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11. 23.
자유무역을 통한 경제적 이득을 고려하긴 했지만 애초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시동을 걸게 한 것은 전략적 판단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중국에 대한 과도한 무역 의존을 벗어나고 군사동맹을 축으로 한 미국과의 관계를 경제적 측면까지 확대해 입체화시키기 위해 추진한 것이 한·미 FTA다. 

<경향신문DB>

하지만 지금 한·미 FTA는 정치적 이유로 발목이 잡혀 재협상을 해야 하는 부메랑을 맞았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FTA를 타결지으려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시도는 실패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제시한 시간과 형식에 맞춰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고 FTA를 타결지을 경우 국내 정치적 후폭풍을 감내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업계를 중심으로 “미국이 요구하는 자동차 조항을 다 양보해도 큰 영향이 없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도는 것을 보면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것은 경제적인 손익 계산보다 정치적 파장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게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FTA 실패로 오바마는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참패하고 한국을 찾아온 오바마는 한·미 FTA를 해결함으로써 FTA에 긍정적인 공화당과 타협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이 무산되면서 오바마는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에까지 공격을 받고 국정운영 능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다. 

가장 큰 잘못은 오바마에게 있다. 대선 후보 시절 한·미 FTA 반대 입장을 보이던 오바마는 대통령이 된 이후 이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변했다. 상황에 따라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이 때문에 ‘더 이상 좋을 수 없다’던 한·미 관계는 처음으로 엇박자를 냈다. 그동안 한국의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준 오바마로서는 어려울 때 자신을 도와주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을 법하다. 실제로 미 행정부 내에서는 한·미 FTA 불발 이후 한국에 대한 곱지 않은 감정을 가진 인사가 상당수라는 전언이다. 

한국도 미국을 다시 보게 됐다. ‘린치핀’ 같은 동맹국이라고 하지만 미국도 어느 순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협정문에 서명까지 한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없던 일로 할 수 있음을 국민들은 똑똑히 봤다. 

이렇게 양국은 FTA 논의 과정에서 국내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FTA 재협상이 길어질수록 양국 관계의 골은 깊게 파일 수밖에 없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한 FTA가 오히려 동맹 관계에 흠집을 내는 ‘위험 요소’가 돼버린 현실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지금부터가 문제다. 한국이 농업을 포함한 모든 분야의 무역에서 관세를 전면 철폐하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함으로써 쇠고기 개방에 합의했다는 이야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다음 협상에서 일사천리로 도장 찍을 일만 남았다는 설도 있다. 

꼼수와 밀실협상으로 국민들의 눈을 피할 수는 없다. 투명하고 공정한 협상을 통해 합의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합의에 실패하거나 국민적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한다면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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