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리포트] 한·미 ‘북핵 대응 강화’의 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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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워싱턴리포트] 한·미 ‘북핵 대응 강화’의 모순

by 경향글로벌칼럼 2010. 11. 1.
한·미 양국 국방장관이 지난 8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42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발표한 공동성명에는 확장억제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확장억제 정책위원회’를 제도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이 확장억제의 수단으로 미국의 핵우산을 명문화한 ‘선언’이었다면, 이번 합의는 북한의 핵 위협이 실제 상황으로 발생했을 때 핵무기로 대응하는 행동 계획을 구체화한 것이다.
 
북한이 영변 핵단지 재처리시설 재가동 통보한날 평양거리를 궤도 차량이 오가고 있다 | 2008.09.25 | 로이터 연합뉴스 | 경향DB


확장억제력 강화는 국민의 안보불안 해소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하지만 핵 억제를 위해 핵이 필요하다는 것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핵 없는 세상’과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논리다. 북한 핵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에 강화된 핵우산을 씌움으로써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한반도에서의 핵경쟁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는 평화적 핵 이용의 권리가 있고, 핵 보유국은 핵 군축을 해야 하며, 핵 비보유국은 핵무기 보유의 야망을 버려야 한다는 원칙이 한반도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또 전 세계적인 핵 군축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미국의 핵우산을 요구하는 한국 정부의 딜레마도 지속되고 있다.

북한과의 외교적 프로세스를 통해 북핵을 폐기한다는 핵 협상의 측면에서도 확장억제력 강화는 역주행이다. 한반도에서 북한의 핵무기와 미국의 핵우산이 서로 맞서고 있는 양상을 구체화하기 때문이다.

2008년 6자회담이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신고·검증하는 단계를 넘지 못하고 주저앉게 된 것도 북한이 9·19 공동성명에 입각한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를 내세워 남북한 동시사찰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핵포기는 북한에만 부여된 의무가 아니며 미국도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을 철폐해야 한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만약 6자회담 프로세스가 조만간 재개되면(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이지만) 북한은 핵우산 문제를 핵심적 이슈로 전면에 내세울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의 핵우산 제공의 근거가 되는 한·미방위공약의 폐기를 조건으로 내걸지도 모른다. 이는 북한이 핵을 폐기하지 않아도 될 확실한 명분 하나를 추가해 줌으로써 가뜩이나 어려운 ‘협상을 통한 핵폐기’를 더욱 요원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어쩌면 한·미는 북핵에 관한 한 상대와 필요한 것을 교환하는 형태의 협상을 이미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북한과 협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뭔가를 양보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 보인다.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북한에는 옵션이 될 수 없다. ‘대화와 제재의 투트랙 기조’란 백기를 들고 투항하든지, 아니면 ‘먹을 수 없는’ 핵을 끌어안고 굶어 죽든지 둘 중의 하나를 고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북한 핵은 협상으로 풀기 힘든 단계에 와 있다. 북한 체제가 붕괴되거나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변화가 발생하는 일이 아니고서는 북핵 문제를 외교로 해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번 SCM의 합의는 한·미가 이 같은 ‘불편한 진실’을 솔직히 인정한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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