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연 칼럼]박근혜 정부와 개성공단은 공동운명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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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

[조호연 칼럼]박근혜 정부와 개성공단은 공동운명체이다.

by 경향글로벌칼럼 2016. 3. 7.
개성공단이 폐쇄된 지 한 달이 돼 간다. 정부가 공단 문을 닫은 이유는 아직도 오리무중이다. 북한에 돈이 들어갔으니 핵 개발에 사용됐을 것이란 정부의 주장은 증거가 없다. 존 메릴 전 미국 국무부 동북아국장은 “구체적인 증거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미국의 북한 정보를 보고 듣고 분석한 정보 전문가다. 주장과 추정으로 개성공단에 사형선고를 내린 정부보다 굳이 말을 지어낼 이유가 없는 그가 더 미덥다.

개성공단 중단과 관련한 황교안 총리와 홍용표 장관의 국회 답변은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다. 홍 장관의 발언 번복 소동은 정부 조치의 부당성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국회의원의 질의에 외운 것처럼 같은 대답을 반복하는 황 총리도 한심했다. “대통령이 말한 강력한 대북 조치 사례를 들어달라”, “안보리 결의를 포함한 제재조치를 도출할 계획이다”. 이러니 ‘테이프 총리’라는 별명을 얻을 만하다. 그는 자신이 국가테러대책회의 의장인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테러방지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국은 북한 문제에 관한 한 고위당국자들의 이런 무능과 무지, 독선이 수용되는 나라이다. 물론 이렇게 된 데는 핵 도발로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증명하려는 김정은 정권 탓이 크다. 북한에 끌려가는 것을 불만스러워하던 국민은 정부의 징벌적 조치를 환영했다. 공단 중단 조치가 법 위반이고 국회 승인 절차위반이며 입주업체 124곳과 협력업체 5000곳의 피해를 아랑곳하지 않았다는 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그렇더라도 정부가 우회로를 선택하지 않은 것은 의문이다. 결의안 채택을 기다려 국제사회의 제재 대열에 동참하는 방식도 있었고, 전면 중단 아닌 중간 단계의 조치도 가능했다. 정부는 그 길을 가지 않았다. 대신 북한을 가장 자극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다.

정부는 개성공단 중단이 유엔의 제재 결의를 이끌어냈다고 평가한다. 거기에 동의할 수 없다. 미국은 “한국의 조치를 존중한다”고 반응했다. 한국이 그렇게 했다니 잘 알겠다는 외교적 표현이다.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한반도사무특별대표는 “직접 북한 고위층에게 우려를 전달했는데도 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을 보고 제재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한국의 조치가 중국의 대북 제재 동참 결심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도라산전망대에서 관광객들이 북한의 개성공단과 기정동 마을을 살펴보고 있다._경향DB


정부는 개성공단이 정부와 공동운명체라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개성공단에 북핵 개발의 자금줄이란 누명을 씌웠지만 그런 논리라면 정부는 3억달러 넘는 미화를 북한에 핵 개발 비용으로 제공한 게 된다. 유엔 제재 대상 국가가 국제사회 제재에 앞장서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의심을 벗으려면 개성공단이 북핵 개발과 무관함을 입증하는 길밖에 없다. 북한의 핵·로켓 능력도 이명박·박근혜 대통령 때 고도화됐다. 핵실험 4회 중 3회, 장거리 로켓 발사 6회 중 4회가 실시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탓을 할 처지가 아니다.

북한은 대북 제재로 인해 상당한 기간 고통을 겪을 것이다. 중국은 칼집에서 빠져나온 칼이 되었다. 사회주의 형제국가가 등을 돌린 것이 가장 뼈아플 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외부의 압박이 강화되면 비난의 화살이 정권이 아니라 외부로 향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북한에는 선거제도가 없다. 지도자는 낙선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이란과 다르다. 유엔 제재는 북한의 군사안보주의를 더욱 강화시킬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 정권의 존속이 위협받는 것을 방치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제재의 끝은 대화와 협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시나리오는 이미 미국과 중국의 제재 담판 때 작성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먼 길을 돌아와야 한다. 박 대통령의 단선적 대처의 비용을 치러야 한다. 국제관계의 변동성을 고려하지 않은 외교적 언행은 유사시 발을 빼기 어렵게 만든다.

남북대화 복원을 위해 정부는 “핵폐기 없이 대화 없다”는 입장부터 철회해야 할 것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 한·일관계 발전 없다고 장담했다가 물러선 ‘버럭 외교’의 재판이다. 버린 카드들도 재검토해야 한다. 그중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보다 나은 남북대화 유인 수단은 없다.

개성은 남북 주민 수만명이 매일 만나 교류하고 동질감을 쌓는 무대였다. 북한의 시장경제 학습장이었고, 남한의 북한 이해하기 현장이었다. 남북은 상대를 비방하는 ‘확성기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개성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남북 주민들이 서로를 보듬는 ‘인간 확성기’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북한군 개성기지가 공단이 되는 데 4년이 걸렸다. 다시 개성기지로 돌아가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개성공단의 꿈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묘비를 세울 때가 아니다.


조호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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